애플카 협력설이 촉발한 현대차그룹의 테마성 랠리가 매수 행렬에 뒤늦게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한 달 만에 일단락됐다. ‘애플’ 딱지를 붙이느냐 마느냐로 그룹 계열사 주가가 일제히 출렁이는 상황에 국내 대표 완성차 기업 주식이 한낱 테마주로 전락했다는 한탄마저 나왔다. 일반 투자자들이 3조원 가까이 쏟아부으며 가격을 올리는 동안 현대차그룹 일부 임원은 보유하던 자사주를 대거 처분해 거액의 차익을 챙겼다.
8일 코스피 시장에서 현대차는 전 거래일보다 6.2%(1만5500원) 하락한 23만4000원에 마감했다. 애플과 직접 협약을 맺을 것이란 얘기가 돌았던 기아차(회사명 기아)는 15.0%(1만5200원) 급락한 8만6300원에 장을 마쳤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현대위아도 각각 8.7%(3만500원), 9.5%(2만1000원), 11.9%(1만1700원) 추락했다. 이들 5개 기업의 시총은 하루 만에 13조5000억원이 감소했다. 기아차가 협력하는 애플카에 배터리를 공급할 것으로 예상됐던 SK이노베이션도 7.4%(2만2500원) 하락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이날 오전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며 ‘애플카 개발 협력 추진’ 중단 사실을 나란히 공시했다. 지난달 8일 애플이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을 위한 협력을 현대차그룹에 제안했다는 보도가 처음 나왔을 당시 현대차는 “초기 단계라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며 사실상 협의 중임을 인정했었다.
관련 종목 주가는 이달 초까지만 해도 국내외 언론을 통해 애플이 현대차그룹 전기차 플랫폼(E-GMP)을 탑재한 자율주행차를 기아차 미국 공장에서 생산할 것이라는 등의 보도가 잇따르면서 계속 들썩였다. 잔칫상이 엎어진 건 지난 주말 애플이 현대차 측의 협의 사실 공개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논의를 잠정 중단했다는 블룸버그통신의 보도가 나오면서다.
애플카 협력설이 나오기 직전인 지난달 7일 이후 협력 중단 발표 전인 지난 5일까지 기아 주가는 6만3000원에서 10만1500원으로 61.1% 급등했다. 현대차도 20만6000에서 24만9500원으로 21.1% 올랐으며, 계열사 및 주요 부품 공급사 주가도 덩달아 뛰어올랐다.
이 기간 매수를 주도한 것은 개인투자자들이었다. 이들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를 합쳐 2조687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조5219억원, 1조2110억원을 팔았다. 현대글로비스·현대위아·만도까지 합치면 개인의 순매수 규모는 2조8139억원에 이른다. 개인은 외국인과 기관이 팔아치우는 이날도 현대차(123억원) 기아차(2446억원) 현대모비스(1700억원) 현대글로비스(607억원) 현대위아(114억원)를 모두 순매수했다.
반면 현대차 임원 14명은 지난달 6일부터 이날까지 보유 중이던 자사주 3537주(우선주 포함)를 내다 판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임원들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여파로 현대차 주가가 내려갔을 때 책임경영의 일환으로 자사주 매입에 동참했다.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자사주를 800억원 이상 사들였다.
현대차 측은 임원들의 자사주 매도가 “단순한 차익 실현 목적”이라며 “임원들의 매도 규모는 약 8억6200만원으로 총액수가 10억원을 넘지 않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창욱 박구인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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