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숙현 아버지 “법정 쇼 가해자들, 진짜 용서 구하라”

입력 2021-02-09 00:04
지난해 7월 경북 칠곡 자택 최숙현 선수의 방 침대 위에 아버지 최영희씨가 올려둔 사진과 국화꽃이 올려져 있다. 정우진 기자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지난해 6월 26일 새벽, 고(故) 최숙현 선수는 부모에게 짧은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가해자들은 가혹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모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서야 했다. 7개월여가 흐른 지난달 29일 가해자들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부친 최영희씨는 “늦게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지만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비하면 절반의 형량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8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소회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김규봉 전 경주시청 감독, 장윤정 전 주장 등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수사를 받을 때도 폭언, 폭행 등 가혹행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다가 법정에 와서야 뒤늦게 혐의를 인정하고 사죄한다는 가해자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혐의를 부인하다 첫 재판 때 돌연 죄를 시인했었다”며 “여러 피해자의 진술, 녹취록 등 확실한 물증이 있으니 태도를 바꿔 형량을 줄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씨는 가해자들이 사죄했던 결심공판 장면을 생생히 기억했다. 김 감독 등은 최후진술에서 최씨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사죄를 드리고 싶다. 너무 잘못했고 늦었지만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최씨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고 “진정으로 뉘우친다면 모든 형량을 다 받은 후에 납골당에 와서 숙현이에게 정식으로 용서를 구하라”고 했다.

가해자들의 뒤늦은 사죄는 법정 최후진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용서를 구하라는 얘길 했지만 최씨는 “그동안 아무 말도 없다 재판부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건 선처를 위한 쇼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

앞서 대구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이진관)는 김 전 감독에게 징역 7년, 장 전 주장에게 징역 4년, 김도환 선수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최씨는 검찰에 항소를 요청했다. 딸은 세상을 떠났지만 ‘제2의 숙현이’는 나타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최씨는 “체육계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 선수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가해자들이 있고, 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사건이 하나의 본보기가 되어 앞으로 제2의 숙현이 같은 선수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그는 “재판에서 저희와 마지막 통화를 하고 나서 다음 날 새벽에 친구들에게 ‘이번 싸움은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너무 힘들다’고 연락한 내용을 알게 됐다”며 “가슴에 대못이 수십개 박힌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자녀를 잃은 부모가 평생 어디 노래방 가서 노래 한 곡 할 수 있겠나. 과일나무 한 번 쳐다보며 위안을 삼는 게 전부”라며 “다만 언젠가 숙현이를 위해 선수들의 인권 보호 등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 한다”고 전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