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 대응 차원에서 출발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육성책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뿌리산업으로 불리는 소재·부품 분야의 경우 특히 골머리를 앓는다. 영세한 업체들이 많은 탓에 숙련 노동자들을 일터에 잡아두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유독 큰 한국의 특성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소부장 육성책의 성패 역시 이 상황을 어떻게 개선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일단 정부 지원책만 본다면 전례를 찾기 힘든 수준이다. 정부는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가동한 이후 소부장 역량 강화에 온 힘을 기울였다.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24일 내놓은 ‘소부장 기업현장 보고서’에 따르면 핵심 수출규제 3대 품목(고순도 불화수소·포토 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은 탈 일본화에 근접했다. 올해도 전폭적 지원이 뒤따른다. 소부장 연구·개발(R&D)에만 2조2000억원을 투자하고 소부장 특화단지까지 조성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24년까지 100대 품목 공급 안정화를 흔들림 없이 달성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다만 업계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미래 청사진을 그리지는 않는다. 산업 특성상 경쟁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숙련된 인재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인재 육성과 관련한 정부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재들이 중소기업을 선호하지 않는 세태가 수시로 발목을 잡는다. 장비업체와 달리 영세한 업체가 많은 소재·부품 분야는 특히 더하다. 한 소재업체 관계자는 “청년 인력들을 키우면 이직하기가 일쑤”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진 점이 문제로 꼽힌다. 지난 4일 한국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이지홍 서울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 수준은 2018년 기준 53.1% 수준이다. 대기업이 월 500만원을 받는다면 중소기업은 월 266만원 수준이라는 얘기다. 인재들이 중소기업을 선호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산업부 관계자는 “과거 뿌리산업 육성책이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외처럼 소재·부품 분야에 특화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소기업이 산업 경쟁력으로 자리 잡은 독일의 경우 한국처럼 임금 격차가 심하지 않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일정 수준 이상의 단가를 보장하고 인재 육성을 위한 훈련 비용도 지원한다. 중소기업은 이를 통해 확보한 여력을 임금 인상에 투입하며 인재를 확보한다. 배규식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중소기업에서 임금으로 지급하기 힘든 훈련비용 등을 기업 또는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 등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