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의용, 국익 우선하는 탄력 외교 펼쳐라

입력 2021-02-09 04:01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 외교부 장관으로 공식 임명됐다.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안을 재가했다. 경과보고서는 국민의힘이 채택을 거부한 가운데 여당이 단독 처리했다. 정 장관은 현 정부 들어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된 28번째 장관급 인사다.

‘미국통’ 외교관 출신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설계자인 정 장관은 교착된 북·미 비핵화 협상을 되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미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이전보다 난관이 더 많아졌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대북 정책을 재검토 중이며 한·미·일 삼각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한·일 관계 개선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한국에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일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평가하며 중국과 물리적 충돌은 아니더라도 극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첫 쿼드(Quad, 미·일·호주·인도)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 중인데 이 역시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하는 차원이다. 미국이 ‘쿼드 플러스’ 참여를 요구할 경우 한국의 입장은 곤란해진다. 중국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미 정상이 첫 통화를 하기 전인 지난달 26일 시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도 쿼드 같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에 한국이 들어가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됐다.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균형 외교가 요구된다. 까딱 잘못하면 국익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 정 장관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중국과도 척지지 않는, 국익의 관점에서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전 정권과 분명히 다른 시각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정 장관의 대북 인식이 3년 전과 변함없어 보이는 건 우려되는 대목이다. 그가 지난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아직 있다”고 말하자 미 국무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확산 의지가 국제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논평했다. 정 장관의 발언을 바로 반박한 셈이다. 이처럼 북한 문제를 두고 한·미 간에 엇박자가 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미 외교 당국과 정책적 공감대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