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위상이 실추된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해 목회자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김운성(64) 영락교회 목사는 겸허하고 겸손한 자세로 목회 현실을 성도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데서 새출발의 실마리를 찾자고 했다.
서울 중구 교회 봉사관의 담임목사실에서 지난달 28일 김 목사를 만나 교회의 코로나19 대응부터 회복을 위한 노력까지 짚어봤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을 대표하는 교회를 이끌고 있지만, 김 목사는 소탈하고 솔직했다. 그는 “목회는 결국 목회자 한 사람의 진실로 귀결된다고 본다”면서 “진솔하고 성경적인 목회로, 영락교회의 미래를 위해 징검다리 하나를 놓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에 ‘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칼럼을 연재 중입니다. 글감을 얻기 위해 메모를 하십니까.
“별도 메모는 안 합니다. 평소 놀면서도 생각하고 차를 타면서도 생각했다가 새벽에 깨어 앉은 자리에서 죽 써 내려 갑니다. 주일 설교문도 토씨까지 완결된 형태의 원고를 미리 써서 토요일 오후 1시가 되면 교회에 보냅니다. 외국어예배 통역하는 분들에게 필요합니다. 설교 전문은 텍스트 형태로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 공개합니다. 28년간 시무했던 부산 땅끝교회에서도 그랬고, 2018년 영락교회에 와서도 계속 공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목사님들 가운데 코로나19가 끝날까 겁난다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역설적으로 지금은 모이지 못하니까 교회의 어려움이 가려져 있는데, 코로나가 끝나고 모든 게 정상화돼 뚜껑을 열었을 때 성도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를 걱정하는 겁니다. 사실 교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입니다만, 교회에 따라서는 목회자에게 책임을 전가해 교회 분란이 야기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목회자가 각자 교회의 상세한 현실을 장로님 등 성도님들과 자주 이야기해야 합니다. 저는 목회에서 오픈(open)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도님은 기도해 주시고 목회자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걸 다하고, 안 되는 건 성도님들과 같이 노력하고 이렇게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 대응 미숙으로 한국교회가 사회 주류에서 밀려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실 역사 속에서 기독교가 다수인 적은 없었습니다. 중세에도 왕이나 영주가 일부 믿었던 거지,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여 거듭난 기독교인은 소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를 넘어서며 기독교인이 20% 정도가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80%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다수입니다. 그동안 크리스천 대통령이 나오고 크리스천 국회의원이 전체 의석의 절반 가까이 나와서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착시입니다. 코로나19로 이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당황해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제 소수로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일단 겸손해야 합니다. 조용히 다수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다음으로 소수만의 장점을 발휘해야 합니다. 정직하고 선량하며 이웃을 섬기는 기독교 본연의 가치를 발휘해야 합니다. 소수여서 안타까운 게 아니고, 기독교인답지 못한 게 안타까워야 합니다. 과거처럼 광장에 100만명 넘게 모이고 기독교인이 유력인사가 되며 부흥의 바람이 부는 걸 기대하기보다, 이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 그게 한국교회의 희망이자 돌파구입니다.”
-영락교회는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우리교회 대책 매뉴얼’을 발표했습니다.
“행정처장님이 컴퓨터를 전공한 교수 출신 장로님인데 꼼꼼하게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교회에선 결혼식이나 외부행사가 많았는데 지방자치단체 지침에 따라 거리두기 단계별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했습니다. 교회의 부서 모임도 단계별로 언제 무엇을 못 하는 건지 명확하게 했습니다. 올해 들어 비대면 대심방을 진행 중입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가 목사로서는 제일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신청을 받아 교구 목사님들이 전화로 성도들을 만나는 데 총력을 다했지만, 1월 안에 마치지 못하고 2월로 넘어갔습니다. 기도 제목을 듣고 함께 성경 말씀을 보고 이따금 찬송도 부르고 개인사도 들으면 통화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는 일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제한 속에서 ‘119 대작전’ ‘한 친구(179) 운동’ 등을 했습니다.
“지난해 3월 첫 주부터 주일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비상시국이라 119 대작전을 떠올렸습니다. 매일 아침 7분짜리 영상을 제작해 성도님들께 보냈습니다. 당시엔 119일만 하면 코로나19가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7월 초가 돼도 상황이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12월 31일까지 남은 날을 세어봤는데 딱 179일이었습니다. 이름은 좀 가볍지만, 한 친구(179) 운동으로 바꿔 본격적으로 매일 영상 큐티를 제작해 보냈습니다. 처음엔 제가 스마트폰으로 집이나 교회 마당에서 찍어 보냈는데 나중엔 방음장치를 보강한 교회 스튜디오에서 촬영했습니다. 올해는 ‘말씀대로 365’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년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독이 목표입니다. 저 혼자만이 아니고 다른 목사님이 성경의 석 장 정도 말씀을 오리엔테이션해 주시면 제가 그중 한 절을 갖고 큐티하듯 묵상을 돕습니다.”
-올해 표어가 ‘눈을 들어 밭을 보라’입니다.
“요한복음 4장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넉 달 후에 추수 때가 온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저 이야기를 하시며 추수 때가 됐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시간은 앞서가 있었던 겁니다. 정신을 차리고 미래를 준비하자는 뜻입니다. 밭으로 나가자고 해서 당장 사역을 많이 하자는 건 아닙니다. 추수할 도구도 챙겨야 하고 준비가 먼저입니다. 밭으로 나가려고 일어서다 보면 준비되지 못한 것들이 보일 테니 우리 자신부터 준비하자는 뜻입니다. 코로나19 기간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고대해마지않던 초대교회가 생각납니다. 한국교회를 걱정하면서 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지금이 바로 초대교회의 시간입니다. 초대교회는 예배당이 없었고 여전도회 남선교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있는 곳이 교회라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예배당이 있어도 온전히 모이지 못하고, 조직이 있어도 가동이 안 되고, 각자 집에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훈련할 기회입니다. 혼자 있으며 성경을 더 많이 읽고 기도에 더 집중하면서 추수할 일꾼으로 준비하자는 뜻입니다.”
-기독교학원정상화추진위원회(기정추) 이사장으로서 여당의 사학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미션스쿨의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여당의 논리는 사립 중·고교와 대학에 정부 돈이 들어가는데 투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일률적으로 이사진을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렇다면 사학법인의 감사를 정부가 맡아라. 1년 내내 감사를 해도 좋다. 하지만 기독교 사학의 건학이념인 종교교육은 계속하게 해달라’고 설득했습니다. 크리스천이 아닌 학생이 학교에 와서 성경을 배우는 게 싫다면 마찬가지로 크리스천 학생이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로 옮겨갈 수 있도록 똑같이 권리를 인정해달라고도 했습니다. 국회 교육위원회 여러 의원에게 입장을 설명했고 일부 공감을 얻었습니다.”
-영락교회와 첫 인연이 궁금합니다.
“부친이 북에 가족을 둔 채 평양에서 전란을 피해 내려오셨습니다. 영락교회에 정착해 재혼하시고 저를 낳아서 제 본적은 교회 옆 충무로입니다. 모친은 제가 두 살 때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고, 동생은 먼 친척에게 입양을 가서 컸습니다. 동생도 어려움을 딛고 성장해 지금은 서울 한 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부친께서는 제가 여섯 살 때 서울 도림교회로 옮겨가셨고 저도 도림교회에서 중고등부와 청년부를 보냈습니다.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3년간 한경직장학금을 받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1년에 두세 차례 불러 학비 도서비 기숙사비를 지원해 주시고 좋은 목회자가 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목회 비전은 무엇입니까.
“목회를 하면 할수록 꿈이 커져야 하는데 저는 초점이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결국, 목회자 한 사람의 진실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청빙 이후 10년 봉직하면서 영락교회의 미래를 위해 징검다리 하나를 놓으면 족합니다. 그걸 디딤돌 삼아 어딘가에 있을 후임 목사가 도약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