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유럽여행 때
어느 실내동물원을 구경했다.
방문마다 사슴, 늑대, 사자, 악어같은
동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 방문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고
깊이 새겨져 있었다.
호기심에 얼른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방은 텅 비어 있었고 정면 벽에
커다란 거울 하나가 걸려 있었다.
내 얼굴이 크게 비쳤다.
이산하 시집 ‘악의 평범성’ 중
늑대, 사자, 악어보다 위험한 동물은 거울을 들여다 본 인간들이었다.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폭로한 장편서사시 ‘한라산’으로 옥고를 치른 시인이 22년 만에 신작 시집을 출간했다. 시인을 가두었던 세상은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언급할 만큼 달라졌지만 불의는 여전하다. 시인은 광주항쟁과 세월호 사건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욕보이는 이들과 “촛불의 열매를 챙긴 소수 민주주의적 엘리트들” 모두에게 눈을 흘긴다.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각별히 집중했던 주제나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고문당할 때 가장 힘든 것은 고문자가 웃으며 자기 자식들 자랑할 때이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그들이 나와 똑같이 평범한 얼굴들이라는 점이다. 살아간다는 것의 다른 표현은 인간이 얼마만큼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가이다. 우리는 가끔씩만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