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프로축구 K리그1 제주 유나이티드와 성남 FC의 경기. 에델의 중거리 슛으로 성남이 1-0으로 앞서가던 후반 29분, 제주의 이창민(27)이 성남 진영 왼쪽에서 볼을 잡았다. 골대로부터 상당히 먼 거리였고 앞엔 성남 수비 3명이 서 있었지만, 이창민은 지체 없이 중거리 슛을 때렸다. 대포알처럼 날아간 슛은 성남 골대 구석에 날카롭게 꽂혔다. 남기일 당시 성남(현 제주) 감독을 당황케 했을 만한 원더골. 마치 ‘중거리 슛의 주인공은 나’라고 선언하는 듯 했다.
이창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중거리 슛이다. 탄탄한 다리에서 나오는 호쾌한 골을 종종 터뜨려서다. 국가대표팀(7경기 출전)에서 기록한 유일한 골도 2018년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넣은 중거리 포다. 4일 제주 서귀포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창민은 “고등학교 때부터 중거리 슛에 재미를 느껴 여러 방법으로 차보는 연습을 했다”며 “임팩트가 잘 될 때 영상을 찍어놓고 안 될 때 돌려보는 등 요새도 슈팅 연습을 즐긴다”고 했다.
슈팅만이 이창민의 전부는 아니다. 제주는 2019년 강등을 겪었지만 지난 시즌 K리그2 우승을 차지하며 1년 만의 승격을 이뤘다. 그 과정에서 이창민의 존재감은 컸다. 3-4-3 포메이션의, 다소 헐거워질 수 있는 중원을 책임져야 했기에 공격적인 성향을 내려놓고 수비부터 연결까지 굳은 일을 도맡았다. 수비는 모든 팀원들이 함께 하는 거라곤 해도, 최소실점(23골)으로 우승한 제주의 수비력에 이창민이 큰 역할을 해줬단 사실을 부인할 순 없다. 이창민은 “상황에 맞게 어떤 포지션에 서 있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훈련했던 게 도움이 됐다”고 떠올렸다.
승격의 기쁨도 잠시, 제주는 이제 K리그1에서의 도전을 이어가야 한다. 이적시장에서 조용했던 제주는 선수단이나 전술에 큰 변화 없이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남 감독은 지난 시즌에 이어 올해에도 이창민에게 주장 완장을 맡겼다. 이창민의 중원 활약 여부가 제주의 한 시즌 성적표를 좌우할 전망이다. 이창민은 “제 포지션에서 어떻게 해서든 싸우고 이겨낼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선수단에 변화가 없다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기도 하다. 아직 몸을 만들고 있는 상태지만, 이미 손발이 잘 맞는 제주 선수들은 4번의 연습경기에서 3승(1무)을 거뒀다.
지난해 태어난 딸은 이창민을 축구에 더 몰두하게 한다. 이창민은 지난해 딸의 초음파 사진을 신가드(정강이 보호대)에 인쇄해 착용한 뒤 경기를 뛰었고, 신가드를 들어 보이는 골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이창민은 “몇 달 전 훈련을 마치고 퇴근하니 딸이 ‘아빠’라고 처음 말했는데 믿을 수 없었다”며 “아이한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에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K리그1에 도전하는 제주만큼이나 올해는 이창민에게도 중요한 한 해다. 김천 상무에 지원해 병역을 해결할 수 있는 기한이 올해가 마지막이라, 하반기에 상무에 지원할 계획이다. 이창민은 “군대 가기 전까지 팀이 정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상무에서 병역을 치르게 된다면, 전역 후 이창민은 선수로서 최전성기인 20대 후반이 된다. 그 땐 2018년 교통사고를 내 받게 된 2년간의 집행유예 기간도, 형 만료 후 적용되는 2년간의 국가대표 선발 배제 기간도 모두 끝난다. 하지만 이창민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생각하며 태극마크를 다시 단다는 꿈은 이미 내려놓았다. 대신 해외 리그를 경험하고 싶단 목표는 있다.
“연봉에 손해를 보더라도 스페인 등 유럽 팀에 가서 선진 축구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은퇴할 때까지 선수로서 축구 경험이나 지식을 많이 쌓는 게 목표입니다.”
서귀포=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