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거짓말로 불신 자초한 김명수, 대법원장 자격 없다

입력 2021-02-05 04:01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없다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해명이 하루 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임 부장판사의 변호인이 4일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김 대법원장은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사표를) 수리해 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고 말했다. 임 부장판사가 건강 문제로 법원행정처에 사표를 제출한 후인 지난해 5월 김 대법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 발언이라고 한다. 진실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할 사법부의 수장이 버젓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허무는 중대한 잘못이다.

녹취록에서 사법부 독립과 국회에 대한 김 대법원장의 저열하고 안이한 인식을 확인한 것도 충격이다. 김 대법원장은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하고”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국회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라는 발언을 했다. 법원의 ‘법관의 의원면직 제한에 관한 예규’에 따라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해야 했는데도 여권의 눈치를 살펴 반려했고 국회의 헌법적 권한인 탄핵소추 움직임을 폄훼했다. 사법부 독립과 헌법 질서를 앞장서서 지켜내야 할 대법원장이 이런 수준의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김 대법원장은 녹취록 공개 후 대법원을 통해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했다며 송구하다는 뜻을 밝혔지만 그렇게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정치에 휘둘리는 대법원장’이란 꼬리표를 달고서 사법부를 제대로 이끌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거취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임 부장판사가 대법원장과 나눈 대화를 몰래 녹음해 공개한 사실도 충격이다. 사법부가 내부 불신이 팽배해 있고 정치화돼 있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줬다. 사법행정권을 가진 고위 법관들이 일선 재판에 개입한 사법농단 사건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타를 날렸다. 사법부는 견제받지 않는 특권에 취해 자정 노력을 소홀히 해 온 게 이번 사태를 부른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날 국회에서 법관으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도 사법권 남용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만신창이가 된 사법부의 권위를 다시 세우려면 구성원들의 뼈를 깎는 자성과 특단의 개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