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캐스팅’ 예고된 논란… 제 발등 찍는 방송가

입력 2021-02-05 04:03
섭외 논란으로 몸살을 앓은 프로그램 장면들. (위쪽부터)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는 외도·양육비 논란의 중심에 선 김동성을 섭외해 뭇매를 맞았고,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경기과학고를 졸업한 의대생이 출연해 논란을 빚었다. 방송화면 캡처

‘이쯤 되면 제작진이 문제’. 방송가는 요즘 섭외 논란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처 파악할 수 없었던 사생활 논란 등으로 불가피하게 얻은 오명이 아니다. 검증 부족이 주로 문제로 꼽히는데, 제작진의 관성적 게으름과 시청률 만능주의가 지적된다.

최근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에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 김동성이 출연했을 때, 시청자는 의아했다. 이혼 부부가 재회해 새로운 관계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에 느닷없이 재혼을 앞둔 연인이 등장해서다. 취지와 동떨어졌다는 점도 문제지만, 김동성 출연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더 많았다.

김동성을 둘러싼 논란은 2018년 전처 A씨가 가정폭력을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국정농단’의 주범 최서원(최순실)의 조카 장시호, 친모 청부살해 시도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여성과 내연 관계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도덕성 범위를 벗어난다. 이를 의식한 듯 제작진은 양육비 논란에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김동성은 “코로나19로 일이 끊기기 전에는 200만원을 계속 보내줬다”고 말했다. A씨는 “기분 좋을 때만 입금했다”고 반박했다.

방송국 관계자는 “경험상 노이즈 마케팅은 눈앞의 시청률은 올릴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판단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섭외 배경에는 ‘재혼’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다뤄보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출연진 흠결이 아닌 제작진 판단 오류에서 비롯된 문제는 더 심각하다. 특히 정보 예능에서 왜곡 논란은 치명적이다. 설민석을 지우고 재정비해 돌아온 tvN ‘벌거벗은 세계사’ 흑사병 편을 본 박흥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중세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의사가 왜곡된 인식을 키웠다”며 “자문해 줬더니 조금도 이용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정보 예능에서 자문단을 꾸리고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은 의문이다. 앞서 이 프로그램이 휴지기를 가졌던 이유가 왜곡 논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수를 답습했다는 점은 비난의 여지가 충분하다. 앞서 설민석이 강의한 클레오파트라 편에서도 곽민수 고고학자는 “틀린 게 너무 많아 언급하기 힘들 지경”이라며 “자문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도 십자포화를 맞았다. 의대 6곳에 동시 합격한 과학고 졸업생이 출연하자 스펙을 전시해 박탈감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처음엔 제작진 감수성 부족이 도마에 올랐지만, 이후 진짜 문제가 불거졌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기과학고 설립 취지는 이공계열 인재양성으로, 의대 진학을 독려하지 않는다.

공정성 논란에 불을 지핀 섭외도 있다. 앞서 TV조선 예능 ‘아내의 맛’에 서울시장 선거 유력 후보인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나란히 출연했다. 예능이 정치인 홍보 창구로 전락할 우려와 타 후보들의 기회 박탈 등 여러 논란이 이어졌다.

방송국 관계자는 “검증 부족 및 편파 섭외가 지속하면 고정 시청층 이탈은 불가피하다”며 “시청률 등 화제성 지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선한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방송이 트렌드를 이끌고 지식을 제공하는 일방향적 창구였지만, 지금의 시청자는 한발 앞서가며 소통을 원하고 있어 제작진도 귀 기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