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나이로 102세를 맞았다. 지난해에도 글을 쓰고 강연하는 일을 계속해 왔다. 내 이야기를 기다리는 청중이 있고,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때까지는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다. 살아 보니 노력한다면 정신력은 늙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정신력이 점점 힘들어하는 몸을 지고 이끌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처음인 고향을 떠나 나그네가 된 지 75년이 넘었다. 그간 육신이 걸어온 길이 험준했지만, 정신적 여정은 더 괴로웠던 것 같다. 그래도 여러 사람의 사랑과 격려가 있었고, 소망스러운 책임이 있었기에 주어진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사랑을 주고받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역경의 열매’를 연재하며 한 개인의 이야기로 100년 가까이 지나온 역사를 소개했다. 우리 민족 모두의 아픔과 문제를 함께 겪어왔기에 내 이야기가 사회나 교회, 특히 기독교 문제에 있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지 않았나 싶다. 이번 연재로 여러 사회 구성원과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에 만족하고 싶다.
나는 강연이나 설교할 때도 항상 결론을 직접 내려주지 않는다. 대신 문제를 던진다. 내가 내린 결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그저 내가 제시한 문제를 듣고 그 해결책이 내 생각과 같으면 성공인 것이다. 친구 안병욱 교수는 강연할 때 결론을 내려준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도 결론부터 내리고 강연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강연을 듣는 이들이 결론을 내리게 한다. 문제는 스스로 풀어야 자기 것이 된다. 내가 풀어준다고 해서 무조건 답은 아니다. 이번 연재도 이런 점에서 사회나 종교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국민일보는 사회 정치 기독교 등 여러 분야를 다루는 종합일간지로 특히 기독교인에게 많이 읽히는 것으로 안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기독교와 관련된 세계 뉴스를 여럿 보도해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기독교인을 길러냈으면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욕심이 더 있다면 역사적 맥락에서 지식을 전달해 달라는 것이다. 지식을 전할 때는 한 토막 사건만 조명하기보다는 역사적 맥락을 감안해 전달하는 것이 좋다. 우리 사회에선 문제가 생기면 역사적 맥락에서 이를 바라보는 이들이 드문 편이다. 시야를 넓히고 역사적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늘어났으면 한다.
지금껏 잠들기 전 일기를 쓴다. 일기 속 지난날을 돌아보며 무엇이 부족했는지 반성해본다. 그러면서 깨닫는 바가 있다. 나를 위해 산 삶과 일에는 남는 게 없다. 그러나 가족과 이웃, 직장에서 만난 이들과 더불어 해온 일과 삶은 행복했다. 사회와 역사, 민족과 국가를 위해 그간 쏟아온 정성이 우리 겨레의 희망이 됐으리라 믿는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지만, 완성하는 분은 하나님’이란 말이 있다. 진실과 사랑, 희망을 전하려 했던 일의 열매는 하나님이 거둘 것이다. 뿌려진 씨앗이 헛되지 않았으면 감사하겠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