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평창 잔치’ 뒤 다시 찬밥… 겨울 빼고 눈 없는 훈련

입력 2021-02-06 04:03
여자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김소희가 지난해 2월 7일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 극동컵 알파인 스키대회에서 슬로프를 빠른 속도로 활강하며 내려오고 있다. 김소희 제공

“겨울 시즌을 빼면 한 해에 두 달만 스키를 타볼 수 있었는데 코로나19로 그마저도 못했어요”

여자 알파인스키의 간판인 국가대표 강영서(24·부산시체육회)와 김소희(25·하이원스포츠)의 지난해는 유독 더 어려웠다. 1년 동안 겨울 시즌을 제외하면 여름과 가을에 한 달씩 해외로 훈련을 나가 눈을 밟아볼 기회도 코로나19 탓에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두 선수는 지난 2019년 12월 중국에서 열린 스키국제연맹(FIS)컵 대회 알파인 여자 대회전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지만 스키 불모지인 한국에 있다보니 성적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강영서는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표팀 대면 훈련도 불가능해서 각자가 알아서 체력 훈련만 해야 했다”며 “개인팀이 없거나 시도체육회에 코치가 없는 분들은 아예 혼자서 운동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평창올림픽 때조차 국제기준에 못 미쳐

알파인스키 국가대표팀이 지난 2018년 평창올림픽을 준비할 때조차 훈련 환경은 좋지 않았다. 평창올림픽에서 효자 종목으로 관심을 한몸에 받던 빙상이 금메달 4개를 획득하면서 기대에 부응했지만, 설상 종목에선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상호가 은메달을 따낸게 이변이라고 여길 정도로 무관심 속에서 훈련을 치러야했다.

평창올림픽을 기준으로 동계올림픽은 설상 7개 종목, 빙상 5개 종목, 슬라이딩(썰매) 3개 종목으로 치러진다. 설상은 알파인스키·크로스 컨트리·스키점프·스노보드·프리스타일 스키·노르딕 복합 스키 6개 종목과 스노보드로 구성됐다. 특히 스키는 동계올림픽 전체 메달의 절반에 달하는 150개의 메달이 걸려있는 큰 종목이다. 그중 알파인스키에서 남녀 복합·활강·대회전·슈퍼대회전·회전과 혼성 등 33개의 메달이 나온다. 하지만 겨울에만 스키를 탈 수 있는 한국에서는 만년설에서 훈련하는 유럽 선수들에 비해 성적을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난 1월 하이원 국가대표 전용 슬로프 정상에서 강영서가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강영서 제공

강영서는 “평창올림픽 때도 개최지 이점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경기 전까지 ‘워터링(슬로프 바닥을 얼려서 평평하게 해주는 작업)’을 한 슬로프를 타본 적이 없었다”며 “국제대회에선 선수들이 공평한 조건에서 탈 수 있도록 슬로프를 탄탄하고 평평하게 얼리는데, 올림픽 개막 직전엔 코스 조성 이유로 이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강영서와 김소희는 무관심 속에서도 4년간 노력한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본선에서 안타까운 실수로 실격 처리되고 말았다.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도 훈련 환경은 바뀌지 않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규격을 맞추기 위해 총예산이 2000억원 넘게 투입된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복원을 전제로 만들어져 쓸 수 없었다. 국가대표팀은 평창올림픽 이후 용평리조트에서 일반인들과 같은 슬로프에서 훈련했다. 김소희는 “용평리조트 슬로프에서는 일반인들이 섞여 주말에는 경기용 기문을 꼽고 훈련을 하는 게 위험했다”며 “그래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설상 훈련을 할 수 있는 겨울 시즌에도 평일에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올림픽이라는 이벤트가 지나가자 자연스레 예산 지원도 줄었다. 지영하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감독은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모든 종목 지원이 줄어들면서 스키 쪽도 상황이 나빠졌다”며 “이전보다 지원이 더 줄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대한스키협회 동계종목 우수선수 육성 지원금은 올림픽 개최 직전인 2017년 3억7900만원에서 그 다음해 2억1800만원으로 57% 수준으로 급감했다. 강영서는 “선수들에게 직접 체감되는 건 수당을 받을 수 있는 국가대표 훈련 일수가 240일에서 220일로 감소했다는 것”이라며 “한 달에 20일이 안 되는 훈련 일수에 스키를 직접 타볼 수 있는 설상 훈련은 겨울까지 다 포함해도 많아야 5개월 적으면 3~4개월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제대회 경험, 자비로라도”

대한스키협회에서 이런 현실에서 자구책으로 내놓은 건 올해부터 시행되는 ‘등급제’다. 올림픽 메달권을 노려볼 수 있는 선수와 올림픽 출전을 할 수 있는 선수의 지원을 차등하겠다는 것이다. 남자 알파인스키에서 세계 30위권 성적을 낸 유망주 정동현(33·하이원스포츠)만이 유일하게 메달권을 노려볼 수 있는 A등급이다.

지 감독은 “알파인스키 올림픽 쿼터는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 각각 한 명이다. 세계 랭킹 30위 안에 들어가야 쿼터가 늘어난다”며 “FIS 월드컵에서 30위권 안에 유일하게 들었던 정동현과 쿼터를 늘어날 때를 대비해 홍동관(26·하이원스포츠)이 현재 국제대회를 치르며 해외에서 훈련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알파인스키 국가대표팀 11명 중 강영서·김소희를 포함한 4명만이 올림픽 출전을 기대해볼 수 있는 B등급이고 그 외 6명은 그마저도 기약하기 어려워 국제대회 지원에서 사실상 배제된 C등급이다. 지 감독은 “향후 5~10년 계획을 생각하고 장기적인 지원이 이어지면 좋겠지만 올림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현실”이라며 “저희도 당장은 현실성 있는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성적이 나와야 다른 선수들이 더 지원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전용 슬로프는 평창올림픽 이후 3년여가 지난 지난달 8일에야 처음 만들어졌다. 협회가 지난해 국제대회에 참석하지 못해 남은 예산을 활용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1년 앞두고서 겨울 시즌에 제대로 된 훈련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전용 슬로프에는 ‘워터링’ 작업을 통해서 국제대회와 비슷한 환경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김소희는 “국제대회에 나갈 때 선수들이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은 한국에서 훈련할 때의 푸석푸석한 눈과는 다른 환경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나마 겨울 시즌이라도 훈련에 지장이 없어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슬로프로 오르는 리프트에서 ‘셀카’를 찍는 김소희(왼쪽)와 강영서. 강영서·김소희 제공

하지만 강영서·김소희는 한목소리로 “올해는 자비로라도 국제대회에 참가하려고 준비 중”이라며 “세계적인 무대는 유럽이기 때문에 우물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소희는 “지금은 대륙컵에서 성적이 나오는 수준이니까 지원을 기다리지 말고 월드컵에 자비라도 내서 성적을 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며 “월드컵에서 계속 도전을 해서 30위 안에 들면 2차전도 뛰어볼 수 있고, 그러면 멀어져 가는 것 같았던 올림픽의 꿈을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