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시대다] 탄생 50주년 됐어도 추억으로 남는 ‘수사 실화극’

입력 2021-02-06 04:05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MBC 실화 수사극 ‘수사반장’의 장면. ‘한국의 콜롬보’로 불렸던 배우 최불암이 범죄를 해결하는 활약상을 담았다. 최근 작품들에도 언급될 만큼 큰 인기를 얻은 국민 드라마다. MBC 제공

올해로 ‘수사반장’(MBC) 탄생 50주년이 된다. 국내 최초 TV 수사극인 수사반장은 최고 시청률이 70%일 만큼 인기가 높았다. 1971년에 시작되어 1984년에 종영되었다가 시청자들의 성원으로 7개월 만에 부활하여 1989년까지 18년간 총 880회가 방송되었다.

“빠라빠라밤 빠라바라밤”. 수사반장을 보지 못한 젊은이라도, 주제곡은 들어봤을 것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이 TV를 보다가 수사반장 주제곡이 나오자 송강호가 “난 이 노래가 좋아”라 말하지 않던가.

얼마 전 방송된 수사극 ‘라이프 온 마스’도 수사반장에 대한 헌정을 담는다. 2018년에 연쇄살인범을 쫓던 두뇌파 형사가 1988년의 공간에서 눈을 뜨고 그 시대 형사를 만나 공조수사를 벌이는데, 1988년임을 알리는 노래로 수사반장 주제곡이 울려 퍼진다. 심지어 수사반장의 최불암이 TV에서 나와 주인공에게 조언하는 장면도 나온다. 굉장한 오마주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도 수사반장을 추억한다. 유재석은 ‘유반장’이 되어 최불암이 연기한 박반장을 패러디한다.

방송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수사반장이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경쟁사의 수사물 ‘만년형사’ ‘형사기동대’ ‘형사’ ‘형사25시’가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비슷한 시기의 대공수사물 ‘113수사본부’ ‘추적’도 수사반장처럼 오래 사랑받진 못했다. 무엇이 특별했던 걸까.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다

수사반장은 ‘수사 실화극’을 표방한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서울지방경찰청의 자문을 받아 만들어졌다. 출연진은 실제와 같은 훈련을 받으며 사건 현장에 출동하기도 했다. 출연자들이 현장의 생생한 감각을 익힌 덕에 리얼리티가 남달랐다. 실제로 추격신을 촬영하는 도중에 최불암을 진짜 경찰로 오인해 도망치는 소매치기를 검거한 일도 있었다. 출연자들은 명예 경찰관으로 임명되어 진급도 하였는데, 최불암은 2018년에 경찰직 최고 영예인 경무관이 되었다.

드라마 제작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고(故) 최중락 총경은 박반장의 실제 모델이었다. 1950년에 경찰에 입문하여 1990년에 퇴임하기까지 1300명의 강력범을 체포한 베테랑 형사이지만,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 한다. 이런 성품까지 박반장의 캐릭터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우직하게 리얼리티를 추구한 드라마였기에, 경쟁사의 수사물이나 후속작 ‘두 형사’ 등이 수사반장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하였다. 이후 수사반장의 인기를 흡수한 것은 ‘경찰청 사람들’ ‘공개수배 사건25시’ 같은 리얼리티 재연프로그램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유가 더 확연하게 와닿는다.

수사반장은 880회 동안 다양한 실제 사건들을 다루었다. 특집 회는 방영 시간을 늘렸는데, 1977년의 300회 ‘남편은 화물 아내는 화주’는 현금수송절도 사건, 1979년 400회 ‘종점’은 택시 강도 살인사건, 500회 ‘사천만의 눈동자’는 아동 유괴 공개수사 사건, 880회 ‘서울은 비’는 연쇄살인 사건을 그렸다.

‘살인의 추억’과 ‘라이프 온 마스’가 생생하게 보여주듯 당시엔 과학수사 시스템이 없었다. 오로지 형사가 육감에 의존해 발로 뛰거나 시민제보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DNA 검사가 없어서, 지문, 혈액형, 치흔 등에 의존한 신원 특정은 불명확했으며, CCTV나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이 없었기 때문에 연고지를 찾아가 아는 사람이나 목격자를 수소문하는 식으로 수사했다. 형사들은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에서 미심쩍은 점을 찾아내고, 용의자를 어르고 달래어 답을 얻어냈다. 이런 방법으로 어떻게 범인을 잡나 싶겠지만 범인들도 허술하긴 마찬가지였다. 일례로 300회 특집 ‘남편은 화물 아내는 화주’ 편을 보면, 범인이 손전등도 준비하지 않은 채 화물칸에서 성냥불을 켜는 바람에 중요한 증거를 남긴다. 또 여관 숙박계에 진짜 주소를 적는 등 어리숙함을 보인다. 완전범죄를 노리는 치밀한 지능형 범죄가 아니라, 생계형이거나 우발적 범죄가 주를 이루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수사극이라기 보다 휴먼극이자 사회극

수사반장이 만들어진 것은 “나쁜 놈들은 반드시 죗값을 받는 드라마 하나 만들라”는 고위층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라 전해진다. 박정희 대통령도 수사반장을 즐겨보았다고 하니, 터무니없는 풍문은 아닐 것이다. 1971년 당시 경찰의 이미지는 바닥이었다. 일제 ‘순사’ 이미지가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개선되지 않은 탓이다. 정권이나 경찰 차원에선 드라마를 통해 경찰 이미지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제작 초기에는 경찰 이미지가 워낙 나빠서 수사반장에 광고가 붙지 않아 출연자들이 몸소 협찬을 얻으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수사반장이 국민적 인기를 누리자, 경찰의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드라마가 경찰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과학수사보다 ‘가학수사’가 일상이었고, 경찰 비리도 만연했던 시절이지만, ‘살인의 추억’ 속 고문 경찰이나 ‘투캅스’ 속 부패 경찰은 수사반장에 나오지 않는다. 인과응보의 법칙과 죄를 뉘우치는 범인과 인간미 가득한 경찰이 있을 뿐이다.

수사반장은 수사극의 면모보다 휴먼드라마의 성격이 강했다. 추리로 퍼즐을 맞추는 지적 쾌감보다 사회정의가 지켜진다는 안도감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휴머니즘이 가득했다. 그런데 휴먼드라마의 성격은 조금만 방향을 틀면 사회구조를 보게 만든다. 범죄자들이 대게 하층민들이었고, 생계를 위한 우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범죄자보다 피해자가 더 악인인 경우도 있었고, 범인이 체포될 경우 남아있는 가족들이 걱정될 때도 많았다. 형사가 수갑을 채우며 “이 친구 정말 잡아넣어야 하는 거야?”라며 반문하는 장면들은 범죄가 발생하는 구조를 생각하게 했다. 수사반장을 거쳐 간 연출자는 15명이나 되었는데, 1978년 고성만이 연출을 맡은 후 수사반장은 점점 사회극의 면모를 띄게 되었다. 사회의 그늘을 비추어 고발을 수행한 셈인데, 이런 성격은 1981년 김종학 연출로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이는 애초 정권이 지향한 드라마의 목표와 상반된 것이었다. 최불암의 회고에 의하면 “세상이 바뀌어서 사회정의가 반듯하게 섰으니, 수사도 필요 없다”며 드라마를 중단하려는 외압도 있었다고 한다.

1989년 10월 12일 방송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가상적으로 해결하는 내용을 담은 마지막 회에서 최불암은 카메라를 정면을 응시하며 “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도 길어집니다”라는 대사를 남겼다. 고도성장으로 인한 빈부격차 강화와 사회연대감 약화가 범죄의 원인임을 이보다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있으랴.

캐릭터의 힘

수사반장이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로, 최불암이 구축한 독보적인 캐릭터를 빼놓을 수 없다. 잠바를 즐겨 입던 다른 형사들과 달리, 박반장은 넥타이 정장 차림이나 바바리코트를 즐겨 입었다. 박반장은 대사와 액션이 많지 않지만, 전체 상황을 아우르면서 문제의 허점을 예리하게 짚어 수사의 방향을 지시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수사의 고비마다 담배를 피워물며 진한 페이소스를 풍겼는데, 매회 4번씩 들어있던 흡연 장면도 최불암이 치밀하게 계산한 설정이었다. 최불암은 불과 만 31세에 중년의 박반장 역할을 맡아, 기념비적인 캐릭터를 완성하였다. 잔뜩 찌푸린 얼굴과 저음의 목소리는 비정한 범죄 앞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으려는 윤리를 보여준다.

이런 최불암의 모습은 1980년에 시작하여 22년간 방송된 ‘전원일기’의 김회장 역할로 이어진다. 과묵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자상하고 속이 깊은 아버지상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페르소나를 구축하였다. 그의 이름은 1990년대 ‘최불암 시리즈’라는 유머로 회자될 만큼 친근해졌고, 그의 목소리와 얼굴은 원조 ‘먹방’이라 할만한 ‘한국인의 밥상’으로 스며들 만큼 편안하게 여겨졌다. 10년간 전국을 다니며 시골 할머니들이 주름진 손으로 차려준 밥상을 받아먹어도 밉상이 되지 않을 인물이 최불암 말고 또 누가 있으랴.

시청 등급 개념도 없던 시절에, 부모님이 수사반장을 좋아한 탓에 사회의 어두움과 더러움을 너무 일찍 알았던 한 어린이는 자라서 드라마를 평론하는 어른이 되었다. 언뜻 생각나는 에피소드만 해도, 죽어도 애도 받지 못한 ‘다방 레지’와 ‘술집 여자’들의 이야기가 한가득하다. 강력반 여순경은 병풍 취급을 받고, ‘직업여성’들은 무시로 희롱당하던 일상의 장면들. 과거 드라마의 만듦새에 감탄하면서도, 그 시절 여성혐오가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과거를 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깊이 생각할 때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