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월 1일까지 46개의 행정명령과 각서, 포고에 서명했다. 정권 초반 대개 그렇듯 전임 행정부 정책을 뒤집는 내용이 다수다. 바이든 대통령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 파리 기후변화협약 복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 복원, 이민 제한 완화, 바이아메리카(제조업 부흥)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 각종 행정조치를 쏟아냈다. 새로 단장된 백악관 홈페이지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사인한 행정조치와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전부 공개돼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을 겨냥했거나 중국과 관련된 조치는 하나도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對中) 정책을 주도할 핵심 인사들이 지난달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했던 거친 말에 비하면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다. 이들은 중국을 ‘가장 중요한 전략적 경쟁자’(재닛 옐런 재무장관), ‘중대한 도전 과제’(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확실한 적국’(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장)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대중 압박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리는 블링컨 국무장관은 중국 문제에 관해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본 원칙이 옳았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다른 건 몰라도 중국 때리기는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이를 보여줄 바이든 외교팀만의 액션이 현재로선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미국 내부적으로 코로나19 대응과 선거 후 분열 수습이 시급하다고 하나 중국을 최대 도전 과제로 꼽은 건 그들이었다. 대중 정책이 다른 외교 사안보다 후순위로 밀린 것인지, 정책 조율에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꺼낸 ‘전략적 인내’를 놓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 기조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워싱턴 조야에 광범위하게 퍼진 반중 정서에 긴장하던 중국은 경계 태세를 누그러뜨린 분위기다. 최근 러위청 중국 외교부 부부장,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 등 외교 라인에서 미·중 협력 메시지가 연이어 나오고 있는 게 첫 번째 신호다. 중국 관영 매체는 “바이든처럼 경험 많고 세련된 정치인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이유는 없다”고 추켜세우면서 바닥을 친 미·중 관계 책임을 이미 떠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전부 돌리고 있다.
정점을 찍은 건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연설이다. 중국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그는 1일(현지시간) 미국 청중들을 상대로 한 화상 연설에서 “중국은 미국의 국제적 지위에 도전하거나 대체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 함께 글로벌 공중보건 시스템을 개선할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도 제안했다. 양 정치국원의 연설은 내용보다도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중국 당국이 처음 대미(對美) 정책에 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등장하기 전에 나올 메시지는 다 나왔다. 이제 시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취임 축전을 보내는 일만 남았다.
미·중 관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시 주석의 축전을 계기로 양 정상이 소통의 물꼬를 트고 오는 4월 예정된 미 정부 주최 기후변화 국제회의에서 양측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중국은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마무리짓고 미국도 시급한 현안들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상황만 안정된다면 미·중 당국자 간 대면 만남도 예상해볼 수 있다.
그때까지 미·중이 말로 하는 기싸움은 그만했으면 한다.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분야로 똑같이 코로나19 및 기후변화 대응, 경기 회복을 꼽았으니 이제 작은 것이라도 행동을 보여줄 때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