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큰 공포를 느끼는 것은 바로 물이다. 식사할 때 마시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괜찮아도 생명체가 득실거리는 바다는 좋아하지 않는다. 바닷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어마어마한 상상력이 나의 공포심을 키운다. 얼마나 심각한지 어류로 만든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잘게 다져 만든 어묵 같은 건 먹어도, 형태가 그대로 보존된 매운탕 같은 건 안 좋아한다. 그럼에도 해마다 바다로 떠나고 아쿠아리움에 놀러 간다.
바다보다 두려운 건 아쿠아리움이다.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곳에서 바다 생명체를 그대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아쿠아리움에서 공포에 떠는 나의 모습은 몹시도 괴상하기에 매번 혼자 간다. 티켓을 끊고 입장하면서부터 어깨는 빳빳해지고 걸음걸이는 느려진다. 가오리나 상어처럼 빠르고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생명체 때문에 자주 비명을 지른다. 개구리나 두꺼비 앞에서는 숨도 가빠진다. 이렇게 치가 떨리는데도 굳이 찾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공포를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공포의 모든 관문을 지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삶에서 찾아오는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가 샘솟는다.
나는 지금 다큐멘터리 하나를 재생시키려고 한다. 바다 생명체인 문어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시작부터 끝까지 바닷속에서 진행되며 각종 해산물이 대거 등장한다고 한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어도 나온단다. 상상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것 같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재생 버튼을 누르리라.
이렇게 조금씩 공포를 이겨내면 결과는 좋다. 예전에 돌고래 피부 같다는 이유만으로 채소 중에 가지를 먹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한 요리사에 의해 튀겨진 것을 먹고는 가지의 맛에 크게 감동받았다. 그때부터 공포를 이겨낸 자리에 감동이 있다는 나만의 계산법이 생겨났다. 앞으로도 나는 공포를 즐기고 이겨내며 살아갈 것이다.
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