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희도 독자예요? 독자는 특별한 사람들 같은데….”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던 찬현이(가명)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서현숙(49)씨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독자를 ‘특별한 사람들’로 여길 정도로, 아이와 세상의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독자를 특별한 사람들로 여기는 아이와 서씨는 소년원에서 처음 만났다. 서씨는 2019년 찬현이를 비롯한 소년원 아이들과 함께 매주 금요일 두 시간씩 책을 읽었다. 그 1년의 독서 경험을 묶어 최근 ‘소년을 읽다’를 펴냈다. “인생의 절반을 국어교사로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서씨를 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났다.
서씨는 처음 수업 제안을 받았을 때 ‘수업이 가능하겠어’란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취지에 끌렸다. 그간 독서 교육 경험을 소년원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후 돌이켜봤을 때 그의 관심은 책에서 아이들에게로 옮겨가 있었다. “책보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에게로 초점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 거 같아요. 책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다리처럼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책이 한 거구나. 궁극적 목적은 사람이구나.”
제대로 읽지 않고, 시늉만 한 첫 수업 후 서씨는 아이들과 소리 내 책을 읽었다. 함께 읽은 아이들은 차츰 ‘이야기’의 재미에 빠진다. 등장인물에 이입하기도 하고, 택배 일을 소재로 한 만화를 읽을 때는 다 읽기 아까워 중간에 책을 덮는 모습도 보인다. 책을 쓴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도 알게 된다. 서씨는 “독서 경험이 적고 책 읽는 힘이 약했던 아이들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에는 예외가 없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책은 아이들에게 재미를 줬지만 아이들 “마음의 맨살”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이들이 읽고 고른 문장들엔 그들의 마음과 처지가 묻어난다. “자동차는 고장 나면 고칠 수 있잖아. 나도 내 인생을 고쳐보고 싶어.” “15점짜리 부모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아이도 있어.”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것이다.” 서씨는 책에서 이와 관련해 “아이의 마음 한복판에 별안간 서게 된 듯하다”며 “몇 글자 안 되는 문장에 가슴이 뻐근하다”고 적었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담은 책이지만 아이들에게 치우치지만은 않는다. 타인에게 고통을 줬지만 “개별적인 삶의 맥락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함께 보여준다. 서씨는 “평가하기보다 내가 느낀 것을 충실하게 보여주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수업을 끝냈다. 마지막 인사로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을까. “가장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너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자기 몸과 마음을 잘 돌본다는 건 자기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고,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적어도 함부로 살지 않을 거 같습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