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던 A씨는 지난해 11월 졸지에 살 곳을 잃었다. 집주인 B씨가 계약기간이 끝나는 대로 나가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계약 갱신을 요청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B씨는 결혼한 자녀가 살 계획이라 더 이상은 계약을 유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서울 부동산 시장 상황을 봤을 때 A씨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통보였다.
A씨는 집주인 가족이 들어와 살 경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규정한 ‘임대차 3법’ 때문인줄 알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A씨가 거주하던 곳은 2013년 12월에 등록한 ‘8년 장기임대주택’이다. 민간임대주택특별법에 따라 올해 11월까지는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가족 거주와 같은 예외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임대차 3법과 구분된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각각 최대 100%, 75%까지 감면받는 대신 강제성을 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B씨의 불법 행위에 대해 500만원의 과태료 및 임대등록 말소에 따른 세제 혜택 환수 조치를 내렸다.
인천 연수구에 거주 중인 C씨는 2019년 10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원을 내는 오피스텔을 구했다. 유형상 ‘5년 단기임대주택’이라 주변과 비교해 시세가 그나마 싼 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전 세입자는 전세 1000만원에 살았다. C씨의 월 임대료는 전세보증금으로 환산하면 약 1억2000만원 수준이다. 이전 세입자보다 12배 정도 더 내는 셈이다. 민간임대주택특별법상 임대료 증액 비율은 5%를 넘을 수 없다. 이를 감안하면 C씨의 임대료는 전세 기준 1050만원 이하여야 한다. 국토부 조사 결과 이전 세입자가 시세보다 크게 저렴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취득세를 아끼기 위한 집주인 D씨의 꼼수였다. D씨는 2016년 해당 오피스텔을 분양받으면서 취득세 580만원을 아끼기 위해 임대주택으로 등록해 자신의 조카를 세입자로 들였다. 국토부는 증액 비율 한도를 넘는 임대료를 받은 D씨에게 500만원 과태료 부과와 함께 임대등록을 말소했다.
세제 혜택을 노린 임대사업자들의 탈법 행위에 대한 첫 전수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토부는 지난해 9~12월 점검 결과 3692건의 임대사업 의무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고 31일 밝혔다. B씨와 D씨 사례처럼 그동안 제대로 조사된 적 없던 장단기 임대주택 시장의 실상이 확인됐다. 국세청과 행정안전부는 임대사업자가 부당하게 챙긴 각종 세제 혜택 환수에 나선다. 국세와 지방세를 각각 담당하는 두 부처는 임대사업 공적 의무 위반 주택 3692건에 대한 세무 검증에 나설 계획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과태료 부과 등 행정 제재에 이어 이들에 대한 세무 검증을 통해 제대로 납부하지 않은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임대소득세를 추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