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중 3국 협력사무국(TCS)이 10주년을 맞았다. 한국과 일본, 중국 3국 간 국제협정으로 2011년 서울 종로에 설립된 국제기구다. 3국은 세계 인구의 21%, 국내총생산(GDP)의 24%, 승용차 생산의 50%를 차지하는 만큼 경제비중이 크지만, 이에 걸맞은 교류와 상호이해는 부족하다. 그것을 확대하는 것이 TCS의 목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최근 1년간 주춤했지만, 역설적으로 정보교환 등 3국 간 공조와 협력은 더욱 절실해졌다. 지난해에도 3국 외교장관회의와 보건장관회의 등은 화상회의로 개최됐다.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 5층 대회의실에서 미치가미 히사시 TCS 사무총장을 인터뷰했다. 미치가미 사무총장은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공보문화원장 등 다섯 번에 걸쳐 11년 이상 한국 근무를 해온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했다. 주중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등을 역임해 중국에 대해서도 이해력이 높았다.
-TCS에 관해 설명해 달라. 특히 정부 간 협력 및 비정부(민간) 간 협력 등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하나.
“TCS는 평화·번영·안정을 위한 협력 추진을 목적으로 한 국제기구다. 3국 정부 간에는 장관급회의가 21개나 있다. 외교, 경제무역, 재무, 환경, 보건, 방재, 문화관광 등 각 분야에서 정보교환과 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 전에는 아주 빈번하게 3국 간 회의가 시행됐다. 한 달에 4번 장관회의가 있기도 했다. 민간분야 경제, 학술, 학생, 문화, 지방 간 교류도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민간의 우량사업(회의나 행사)을 지원하거나 직접 실시하기도 한다. 성과도 적지 않고 보람도 느낀다. TCS에는 32명의 직원이 있으며, 한국 사람이 조금 많지만, 기본적으로 3개 국가에서 비슷한 규모로 나와 있다.”
-그동안 어떻게 운영됐으며, 향후 핵심 추진 사업은 무엇인가.
“설립 후 각 정부 부처와 의사소통을 구축해 점점 신뢰를 얻어왔다. 3국 정부로부터 협력사업 요청을 받거나 TCS가 직접 제안해서 협력안건을 실행하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 1년여 동안 인적 교류가 모두 중단됐지만, 이 기간에도 각종 화상회의를 주관하고 통계, 교류실적 등의 책자를 출판해왔다. 3국 정상회의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각 분야 장관회의는 3국의 절실한 수요가 있고 국민의 복지와 행복에 직결된 만큼 의미가 크다. TCS는 정부와 민간 모든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확대, 강화해 나갈 생각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3국의 협력이 더욱 절실해졌다. 어떤 분야가 초점이 될 수 있나.
“코로나19 대책에는 국제적인 정보 공유가 생명선이기에 3국의 정보교환과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에도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서 한·일·중 보건장관회의를 두 차례 실시했다. 코로나 대처와 경제회복이 최우선이겠지만 실업, 정신적 스트레스, 격차 확대, 빈곤층 증가 등 훼손된 인간안보(human security)에 대한 협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에 대한 한·일·중 의식과 대응 차이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나.
“현재 일본은 감염자 수가 많다. 한국은 상황이 개선되고 있어서 다행인데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응 측면에서 보면 우리 3국은 우등생이다. 우수한 의료진이 있고, 정비된 병원과 행정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3국이 제도에 차이가 있으며 국민이 요구하는 바 또한 다르다. 한국은 메르스(MERS)의 경험을 바탕으로 법률과 행정을 강화해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일본은 마스크 착용, 위생 습관이 일찍이 정착돼 있는데, 디지털 행정 강화는 부족하다. 중국은 기본적인 대처방법이 조금 다르다. 사무국에 3국의 직원이 모두 있지만,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은 중국이 가장 강하고 다음이 한국이라는 인상이다. 백신에 대한 인식 차이도 있다. 한국에서는 하루빨리 보급하자는 목소리가 강하다. 반면 일본 정부는 일찍부터 백신 접종을 준비해 왔지만, 여론에 신중한 의견도 적지 않다.”
-일본과 비교해 한국 사회의 장단점은 뭐가 있나.
“한국인의 특장은 속도와 집중력이 좋다는 것이다. 목전 과제에 집중해 빨리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해외에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도 눈에 띈다. 실제로 유학, 해외 근무, 이민 등이 많다고 느낀다. 일본에 좋은 점이 있다면 중장기적 발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 사람과의 신뢰나 약속을 중요시하는 것 등이라고 생각한다. 두 나라가 이런 장단점을 서로 배우며 더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학생들에게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 번째는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 친구들을 사귀라는 것이다. 취업이나 승진에도 유리할뿐더러, 자신의 시야를 넓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해외의 선진사례를 배우며 자국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두 번째는 식당이나 지하철 등에서 차례를 지켜 줄을 서거나, 주위를 배려하는 것 등 좋은 매너를 함양하라는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 취임 이후 한·일 관계가 좀 개선되기를 기대했는데,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반한 감정이 많다고 들었다. 실제로 일본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1983년부터 한국을 지켜봐 왔고 한·일 관계 업무를 몇 차례 맡아 왔다. 지금 상황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 가장 좋았다. 당시 일본은 새로운 한국을 발견했다.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양자 관계가 시작될 것으로 생각하고 환영했으며, 한국을 높이 평가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일본인의 마음은 한국에 대한 실망으로 많이 변했다. 일본 고등학생의 해외 수학여행 행선지 통계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2012년까지 늘 1, 2위였던 한국이 최근에는 10위권에서 사라졌다. 한국을 방문하는 학생 수가 베트남이나 뉴질랜드의 3분의 1로 떨어졌다고 한다. 아주 심각하다고 느껴진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지식과 관심은 과거보다 대폭 늘었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보통 일본 국민이 느끼는 친근감이나 신뢰도는 크게 떨어진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 측이 이에 대해 별 신경을 안 쓰는 것으로 일본에 비치고 있다. 일본 보통사람의 마음은 이미 한국을 떠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민간교류도 많이 줄어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반일 감정이 적지 않다. 서로 좋지 않은 감정이 좀 풀리고, 상대국에 대한 이미지가 좀 나아지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한국도 일본 사람에 대해 역지사지해줬으면 좋겠다. 상대방이 왜 그러는지,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하고 배려해주면 나아지지 않을까. 가깝지만 잘 모르는 먼 나라가 될 우려가 있다. ‘관광도 스시도 (김치도) 좋아 이미 잘 안다’란 발상은 오히려 위험하다. 이웃나라 이해는 난도가 높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한국과 중국에서 근무하면서 어떤 차이를 느꼈나.
“베이징에서 근무할 당시 중국은 ‘일본에 선입견이 많다, 보다 객관적으로 일본을 바라봐야 한다’라는 움직임이 많았다고 느껴졌다. 베이징대 등 많은 명문대에서 일본 문화 행사가 성대하게 거행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한국이 중국보다 일본에 대해 공정하고 냉정한 눈이 더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근년에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서예, 노래, 스포츠가 취미라고 들었다. 한국 노래도 잘 부르나.
“서예는 중국의 당시(唐詩) 특히 이백, 두보, 왕유 등의 시를 쓰고 있다. 한자는 짧은 표현으로 웅장한 자연과 사람의 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의 교양과 지식의 기반이다. 한국 노래는 80여곡을 부를 수 있다. 사랑의 미로, 빙글빙글, J에게, 비 내리는 영동교 등 1980년대 유행가를 특히 좋아한다. 문화는 마음에 와닿고, 무엇보다도 즐겁다. 말도 노래도 국경을 넘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큰 기쁨이다.”
오종석 논설위원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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