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내 가치관만 옳다고 내세우다… 회개하고 주와 동행하는 삶

입력 2021-02-01 03:04

농사를 짓는 시골에서 4대가 함께 살았다. 대가족 속에 귀여움도 많이 받았지만 지켜야 할 예절은 너무 많았다. 어른이 식사하기 전엔 수저를 들 수 없었고, 식사 중에는 밥 먹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시집 온 어머니는 증조할아버지 대소변 수발과 시부모님도 각별히 모셔 효부상도 몇 차례 받았다.

이런 영향으로 나는 누구보다 예의 바르고 모범적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내 기준에서 벗어나 비양심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지 못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선생님께 터무니없이 말대꾸하는 모습을 보고 혼을 내 주려고 친구의 신발 속에 물을 가득 부었다. 추운 날씨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반드시 잘못을 고쳐주어야 했다.

이런 가치관 때문에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남편과의 관계였다. 매사에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대충 넘어가는 남편과 대화는 점점 막혀가다가 물건을 집어던지는 상황까지 일어났다. 남편을 근본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고 판단정죄하느냐는 남편과의 대립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었다. 싸울 때마다 분이 끓어오르고,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는데도 신앙은 바닥을 쳤다.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들어도 은혜는 잠시 뿐 대립은 계속돼 더 이상 못 살 것 같아 작은교회 예배에서 사실을 털어 놓았다.

얘기를 들은 일꾼은 내게 ‘예수님이 주인 맞느냐?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본 부활과 네가 알고 있는 부활이 같은 부활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누가복음 24장과 마태복음부터 다시 읽으며 고민해 보라고 했다. 잠을 설칠 정도로 기도하며 마태복음을 읽기 시작하는데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로 반복되는 말씀과 누가복음 24장과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누가복음 24장의 제자들이 본 부활, 그 현장에 내가 함께 있는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이 선명해졌다. 그러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과 성경을 믿었다’는 요한복음 2장 22절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제자들은 부활의 표적을 통해 믿었고, 나 또한 제자들과 동일하게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됐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주인 되어 내 마음대로 살았어요. 이 지옥 갈 죄를 아버지 앞에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내 마음에 천지개벽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판단 정죄한 남편이 창조주가 생명을 바꿀 만큼 귀한 존재임을 알게 되자 사랑의 마음이 부어졌다. 남편이 내 휴대폰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실수를 했을 때도 웃음으로 받아 주었고, 가족들에 대한 마음이 급해져 날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떨떨해했지만 내 변한 모습에 서서히 마음들이 열리기 시작했고, 80이 넘으신 할머니께서 ‘내가 예수를 죽였어. 내가 예수를 죽였어!’ 하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멀리 사는 친구들이 춘천까지 와서 1박2일 예배드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도 했다.

이제는 내 안에 오신 주님을 한시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길 기도하게 된다. 모든 물질과 모든 시간과 나에게 있는 이 모든 것들을 허락하신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한 번뿐인 인생, 언제 주님 부르실지 모르는 인생에 초대교회 사람들이 그랬던 것 같이 나 또한 주를 위해 살고 죽는 그런 인생으로 주님께 기억되고 싶다.

김정민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