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피해자 일상 회복’과 ‘가해자 처벌’ 등의 가치에 대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피해자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김 전 대표를 경찰에 고발한 시민단체를 향해 “제 의사와 무관한 것으로 매우 부당하다”고 비판하면서다.
전문가들은 제3자의 고발로 피해자가 2차 피해에도 원치 않는 수사를 받아야 하는지, 성범죄에 대한 선택적 수사가 가능한지 등에 대해 피해자 중심주의 관점을 토대로 발전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의당과 장 의원은 이번 사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공동체적 해결을 앞세웠다. 정의당은 27일 논평에서 “모든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의 의사를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고, 장 의원 또한 앞서 “저 자신을 위해 (김 전 대표) 고소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시민단체 활빈단이 김 전 대표를 고발하며 논쟁이 촉발됐다. 2013년 6월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고소해야 하는 범죄) 조항이 폐지되면서 성범죄는 고소·고발과 무관하게 수사 진행이 가능해졌다. 친고죄 폐지는 피해자의 고소 부담을 덜고, 가해자의 무리한 합의 종용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수사 진행이 가능하도록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기획위원은 “(친고죄 폐지 취지는) 당사자가 특수한 사정이 있는지 살피자는 얘기”라며 “사법 절차가 아닌 다른 형태의 해결을 원하는 피해자의 멱살을 잡고 경찰서로 가자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고발 조치에 대해 “저의 일상으로의 복귀를 방해하는 경솔한 처사”라고 비판했는데 이는 사법적 절차에 따른 가해자 처벌보다 피해자의 일상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른 것이다.
한국여성학회장을 지낸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피해자 이기주의는 다르다”며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외부의 개입은 성폭력 사건 해결에 있어 대단히 부정적인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계가 활빈단의 고발 조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다른 편에선 성범죄 사실이 엄존하는데, 과연 선택적 처벌을 해도 되느냐는 사회적 물음을 던졌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정의당을 향해 “현 사법체계를 무시하는 것이고, 자신들의 과거 주장을 뒤집는 행동”이라며 “친고죄 폐지 이유와 목적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비판했다.
장 의원의 결정이 결국 ‘제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다수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우 장 의원과 달리 사법적 절차를 최후의 문제 해결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은 김 전 대표 사건을 이첩받아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김 전 대표를 고발한 활빈단 관계자는 “고발을 취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양민철 박재현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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