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檢 개혁은 권력다툼 변질… 정치가 공수처 흔들어선 안돼”

입력 2021-01-28 04:02
이찬희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26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협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다음 달 26일 퇴임하는 이 회장은 “지금의 검찰 개혁은 권력 다툼이 되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윤성호 기자

전국 3만여명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이찬희(56·사법연수원 30기)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회장이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다음 달 26일 퇴임한다. 이 회장 재임 중 변협은 협회가 추천한 김진욱(55·21기) 변호사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에 임명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 회장은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변협회관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수처 1호 수사’는 인선을 마친 뒤 내부 구성원이나 외부 회의체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그는 “지금의 검찰 개혁은 권력 다툼이 돼버렸다”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회장은 애초 공수처의 필요성에 의문을 가졌고 도입을 반대했었다. 그는 “상설특검과 특별감찰, 검찰 등 이미 다양한 제도가 있어 그것을 잘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설문조사와 입법 과정에서 검찰 개혁을 바라는 국민 대다수의 열망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조직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그는 공수처 성공의 첫 조건으로 정치권 불개입 원칙을 꼽았다.

-지난 21일 출범한 공수처가 시험대에 올랐다. 공수처가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치인들이 공수처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리하면 칭찬하고, 불리하면 비판하면서 수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정치인들은 마음에 안 들면 성명부터 낸다. 국민들도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에 따라 공수처에 대해 공격적이거나 우호적인 태도를 갖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첫돌을 맞은 아이에게 어른의 능력을 요구하는가. 올해 처음 시행되는 공수처가 안착될 수 있도록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야당이 공수처법은 위헌이라며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결과가 곧 나온다.

“단연코 공수처가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수처 출범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쨌든 국민의 대표 기관인 의회에서 통과한 법이다. 출범을 했다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수사기관으로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회의 의무다.”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 사건,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등 공수처 1호 수사를 두고 여러 전망이 나오는데.

“공수처 1호 수사를 처장이 단독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수처 검사 인선이 마무리되면 그 안에서 혹은 수사심의위원회처럼 외부 자문기구에서 어떤 사건을 수사할 것인지를 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조직 구성이 안 됐는데 1호 사건을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본다.”

-김진욱 공수처장을 처장 후보로 추천한 이유가 궁금하다.

“김 처장은 공수처장의 필수 요건인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신념, 수사능력, 책임감, 리더십을 모두 충족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요건인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무명’이라는 평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어느 한쪽에 줄을 댄 적이 없었다. 김 처장은 대형로펌 변호사를 하면서 특수수사를 변론한 경험과 특검수사 경험도 있다. 3개월이 짧다고는 하지만 나도 특검에서 배운 형사사건 지식의 90%를 아직까지 써먹는다.”

-공수처장 추천 과정에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까.

“김 처장이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이거 내가 했던 사건인데?’ 하고 처음 알게 된 사건이 있다. 1996년 참여연대가 부패방지법을 입법 청원하는 단초가 됐던 사건인데 이후 공수처 출범의 촉매가 됐다. 김영삼정부 시절 대한안경사협회장이 보건복지부 장관 부인에게 뇌물을 건네 재판에 넘겨졌는데, 당시 2심 배석판사였던 김 처장이 1심에서 석방된 협회장을 법정 구속시켰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나서 공수처가 출범됐고 본인이 처장이 된 것은 운명이 아닐까.”

-김 처장이 차장 인선을 복수 제청하겠다고 밝히면서 중립성 논란이 일었다.

“한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공수처가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 기구라는 대표적 예로 차장 인선을 꼽고 싶다. 과거처럼 밀실에서 사전 조율을 통해 형식적으로 1명을 제청하고 임명하는 것이 맞겠는가. 공개적으로 복수의 후보를 제청하고 그 과정에서 여론과 임명권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훨씬 민주적인 추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진행 중인 검찰 개혁이 국민을 위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지.

“어려운 질문이다. 검찰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국민의 인권 보장과 변론권 확대에 있다. 그런데 지금의 검찰 개혁은 검찰을 누가 장악하느냐의 싸움이 돼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검찰 개혁의 방향성은 옳지 않다고 본다. 또 개혁은 내부 구성원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힘들다. 내부를 적폐로 몰거나 무시, 압박하는 식의 개혁은 옳지 않다. 지난해 검찰 인사처럼 ‘총장 패싱’이 있어서는 안 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는 어때야 할까.

“유기적이고 기능적인 협의체가 돼야 한다. 장관이 조직에 대한 통제를 가진 지휘권자일지라도 검찰의 특수성을 고려해 지휘권을 써야 한다. 검찰청법은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개개의 사건에 장관이 일일이 개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이 장관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측면과 동시에 총장은 정치권으로부터 방패막이 되어야 한다.”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거는 기대는.

“소통에 능한 분이라고 알고 있다. 대의명분 싸움에 매달리기보다 검찰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내부와의 소통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검찰에 대한 정치적 외압을 막아내는 데에도 힘 써주길 바란다.”

-2년간 변협을 이끈 소회는.

“큰 문제 없이 2년을 마치게 돼 감사하다. 세계변호사협회 총회를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원활히 마쳤다. 공수처라는 국가의 중요한 수사기관 출범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재임 중 좋은 성과들을 내서 만족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사회문제를 두고 이념 갈등을 겪었다. 외줄 타는 심정으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퇴임 후에는 변호사로 돌아간다. 부끄럽지 않은 변호사 생활을 할 계획이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