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욥기엔 까닭 없이 고난을 겪는 한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욥은 본문 내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하나님께 고난의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한다. 욥기 후반부에 하나님이 등장하는데, 대답이 기묘하다. 질문에 관한 답은 없고, 인간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천지 만물의 신비만 열거한다. 하지만 욥은 그제야 위안을 얻는다. 영국 추리문학의 거장이자 사회·문학 비평가로 활약한 GK 체스터턴(1874~1936)은 그 이유를 이렇게 해석한다.
“사실 하나님이 등장한 이유는 수수께끼를 풀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수께끼를 내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을 설명하길 거부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그분의 계획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나님의 수수께끼가 사람의 해답보다 더 만족스럽다.”
‘역설의 대가’로 불릴 정도로 세상만사와 각종 문학작품을 역설적이고 해학적으로 풀어낸 체스터턴의 시각이 고스란히 단긴 문장이다. 추리소설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그는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 신앙의 길로 들어섰다. 체스터턴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무신론자이자 당대 지성인이던 조지 버나드 쇼와 버트런드 러셀 등과 논쟁을 벌이며 참된 기독교 정신에 관해 역설했다. 논리와 유머로 무신론에 맞선 그의 영향은 후대 작가에게도 이어졌는데, 대표적 인물이 CS 루이스와 필립 얀시다. 영국 문호 TS 엘리엇은 그를 “후대에 영원토록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평했다.
책은 1911년 출간된 ‘체스터턴 캘린더’ 등 체스터턴 생전과 사후에 발간된 여러 선집에서 엄선한 문장들로 구성돼 있다. 체스터턴의 아포리즘인 셈이다. 정통 기독교 신앙을 변호한 작품 ‘오소독시’(Orthodoxy) 등에서 인용된 부분에는 신앙의 본질을 다룬 문장이 많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기고한 칼럼니스트였던 만큼 당대 정치 현실을 풍자한 부분도 많다.
“사람들은 기독교에 싫증이 난 게 아니다. 싫증이 날 만큼 기독교를 탐구한 적도 없다. 사람들은 정치적 정의에 싫증이 난 게 아니다. 정치적 정의를 기다리다 지쳤을 뿐이다.” “현대 세계 전체가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있다. 실수를 계속하는 게 진보의 일이고, 그 실수를 바로잡지 못하게 막는 게 보수의 일이다.” “여론은 언제든 들불이 될 수 있다. 이견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들불.” “현대 세계에서는 학문의 쓰임이 아주 다양하지만, 주된 용도는 부자의 잘못을 덮기 위해 글자를 잇고 기워서 긴 단어를 새로 만드는 데 있다.”
그의 문장을 읽다 보면 1920년대 영국 사회와 요즘의 우리 상황이 겹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짧은 글 속에 드러난 저자의 혜안이 한국교회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숙고하게 만든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