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고민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급감했던 자동차 수요가 예상보다 빨리 회복된 데다 급격한 전동화 추세에 따라 반도체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량용 반도체 가격 인상에 따른 차값 상승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7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차량용 반도체를 제때 수급받지 못하면서 생산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은 전 세계 공장의 1분기 생산계획 조정 가능성을, 다임러와 아우디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한 신형 고급 모델 출시 연기를 검토 중이다. 포드와 도요타, 닛산, 혼다 등도 생산을 줄이고 일부 공장의 가동 중단과 폐쇄 등을 고려하고 있다. 국내 기업인 현대차·기아는 다행히 여유분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은 지난해 말부터 심화됐다. SK증권 권순우 연구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따른 감산과 생산 차질, 일부 지역에서의 감원 뉴스들이 확대되고 있다”며 “다양한 편의·안전기능 및 전장화 기능 탑재 확대로 필요한 반도체가 증가하고 있으며, 전기차·하이브리드차의 경우 기존 내연기관 시스템보다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차량용 반도체가 통상 3~4개월 전 발주받아 만들기 때문에 급증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갈등에 따라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가 거래 제한 기업으로 분류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또 스마트폰이나 PC용과 달리 차량용 반도체의 마진이 작아 공급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점도 원인으로 거론된다. 길게는 6개월까지 공급 부족 사태가 이어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요국들은 차량용 반도체 증산 요청을 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각국 정부는 전 세계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 TSMC 등에 증산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각국 반도체 업체들의 가격 인상 발표가 이어지면서 차값 상승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네덜란드 NXP반도체, 일본 르네사스, 대만 UMC,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은 차량용 반도체 가격을 10~20% 인상한다고 완성차 업체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도 최대 15% 인상안을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상된 반도체 가격이 자동차 생산 원가에 영향을 미치면서 완성차 업체의 이익 감소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