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전략(new strategy)을 채택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기존의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북·미 정상 간 직접 담판에 의존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을 사실상 폐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대북 전략을 고심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감지되는 변화도 있다. 일본을 중시하는 모습이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최고위 당국자들은 새로운 대북 정책을 설명할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일본을 빼놓지 않고 거론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 양자가 아니라 ‘한·미·일’ 3각 공조 체제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의사를 굳힌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서 일본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북핵 전문가인 켄 가우스 미국 해군연구소(CNA) 국장은 24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미·일 3각 공조라는 한 요인만으로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인 중 하나가 한·미·일 3각 공조”라고 말했다.
일본과 불편한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는 기회이자 위기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한국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한·미·일 3각 공조 체제에 못 이기는 척 동참하면서 북핵 문제도 진전시키고, 한·일 갈등도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한국 정부가 일본을 신뢰하지 못해 한·미·일 3각 공조에 소극적일 경우 한·미 관계마저 삐걱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이 전문가는 전망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 5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대북 정책에서 일본을 언급한 최고위 당국자들은 벌써 4명이나 된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 등이 일본을 거론했다.
미국 상원의 인준 절차가 완료될 경우 미국 외교를 총괄할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지난 19일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핵 해법을 묻자 일본을 꺼냈다. 블링컨 지명자는 “우리는 북한을 향한 전반적인 접근법과 정책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면서 “이것은 특히 한국과 일본 등 동맹들과 긴밀히 상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대북 정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일본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한 기자로부터 ‘바이든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정책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일본과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사키 대변인은 “북한의 핵탄도미사일과 다른 확산 관련 활동들은 심각한 위협”이라며 “우리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접근법은 한국과 일본, 다른 동맹들과의 긴밀한 협의 속에 북한의 현재 상황에 대한 철저한 정책 검토로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원 인준을 통과한 오스틴 국방장관은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과 23일 통화했다. 미국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오스틴 장관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을 이행하는 데 있어 일본의 지속적인 리더십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면서 “오스틴 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를 제공하는 데 있어 동맹으로서 일본의 역할을 강화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일본 교도통신의 보도는 더 구체적이다. 교도통신은 “미·일 국방장관이 처음으로 전화 회담을 갖고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방침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이어 “미·일 국방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원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 선박이 해상에서 다른 선박에 화물을 옮겨 싣는 환적을 막는 데 있어 협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도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통화를 했다. 사카이 마나부 관방부(副)장관은 통화에 대해 “북한 정세를 놓고 계속 일본·미국, 일본·미국·한국이 긴밀히 협력하는 것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본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일 3국 공조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다. 동맹국들을 겨냥한 북한의 이간책을 막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중국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크고, 국제적인 대북 공조에 구멍을 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한·미·일 공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분석된다.
가우스 국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한·미·일 공조를 추진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며 “한·일은 강력한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우스 국장은 또 “한국은 남북 대화를 원하고 있고,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을 원하고 있다”면서 “한·일 양국은 북한 문제를 놓고 상대방을 도울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협력이 더 쉬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우스 국장은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 중 특정 국가를 겨냥해서가 아니라 협력에 소극적인 국가에 대해 협력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전문가는 “문재인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두 축은 남북 대화와 반일 감정”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3각 공조를 강조할 경우 문재인정부는 남북 대화와 반일 감정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중국 문제 등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을 비롯해 바이든 행정부에서 지일파가 다수 포진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시절 밀착했던 미·일 관계가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총리 시대를 맞아선 상대적으로 긴밀하지 않다는 것이 그나마 한국에 유리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