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을 보면 애틋합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가슴 아팠을지 느껴집니다.”
2005년 세상을 떠난 고(故) 고우영 화백의 차남 고성언 실장은 ‘고우영 삼국지’ 1권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며 이같이 말했다. 최초 신문 연재(1978~1980년) 당시 검열로 인해 무더기로 잘려나갔던 고우영 삼국지는 2002년 완전한 모습으로 재출간됐다. 당시 고 화백은 작품을 아이에 빗대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당시 군용 트럭 비슷한 것에 깔려 팔 다리 몸통이 갈가리 찢기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비 되는 내가 애통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더 절통했던 것은 그 불구가 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줄 엄두를 못 내고 24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길거리에서 앵벌이를 시켰다는 사실이다.”
24년 만에 본래 모습을 되찾은 ‘고우영 삼국지’가 2021년 들어 컬러판으로 새단장했다.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넘은 작품에 색을 입힌 것은 고 화백의 차남 고성언 고우영화실 실장이다. 2008년 컬러로 신문에 연재하다 중단됐으나 2015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완성시켰다. 지난 21일 경기도 김포시 사무실에서 고 실장을 만났다.
‘고우영 삼국지’는 또 하나의 판본이다. 원작을 따라가면서 고 화백만의 독특한 해석과 입담이 더해졌다. 해석의 과감함과 자유로움, 위트는 이후 나온 만화 삼국지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 실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삼국지를 접하시고 많이 좋아하셨는데, 본인 머릿속에 삼국지가 완전히 들어 있었던 거죠. 연재를 하시면서 양념도 치고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채워 넣어 각색이 된 거죠.”
헤밍웨이를 우상으로 꼽을 정도로 문학가를 꿈꾼 고 화백의 강점이 반영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아버지 작품 특징으로 그림과 함께 글을 많이 꼽는데, 인물 간의 관계 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돼있는 건 문학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고우영 삼국지는 인물 및 사건 묘사에서 그 전과 다른 점이 많았다. 제갈량과 관우의 관계가 대표적인데, 고 화백은 둘을 경쟁 관계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제갈량이 관우의 죽음을 방조한 것으로 그렸다.
수많은 인물이 나오는 삼국지에서 고 화백은 어떤 인물에 끌렸을까. 관우 묘사에 공을 들이고, 이름 ‘우’의 한자가 자신과 같다고 작품에서 묘사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고 실장은 아버지가 관우와 함께 조조를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가 조조에 대해서 남자답고 리더의 본보기라며 좋게 보셨다”고 말했다. 고 실장은 작품을 통해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아버지 분위기가 드러나요. 아버지가 이때 이렇게 생각하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물들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고우영 화실에는 고 화백이 남긴 원고가 작품별로 상자에 담겨 한쪽 벽면을 넓게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작업은 아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그는 어릴 때부터 고 화백이 작업하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일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얇은 펜을 잉크에 찍은 후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인물들이 나오는데, 저에게는 마술 같았습니다.”
김포=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