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와 애플의 ‘애플카’ 생산 협력 가능성이 제기되자 SK이노베이션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라는 지리적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제안을 받은 현대자동차그룹이 기아에 애플카 생산을 맡길 경우, 생산 거점은 미국 조지아주 기아 공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기아는 최근 사명을 변경하며 ‘플랜S’를 본격 추진키로 했다. 이 가운데에는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목적 기반 차량(PBV)이 포함돼 있다. 기업 고객의 요구에 맞춰 차체를 만드는 것으로 애플과 협력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아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기아는 20일 “자율주행 전기차 사업 관련 다수의 해외 기업들과 협업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공시했다.
SK이노베이션은 3조원을 투자해 조지아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제1공장은 올해 상반기 중 시험 가동에 들어가며 내년 중 양산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2023년 초에는 2공장도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12년 기아와 전기차 개발 및 보급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소울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는 등 꾸준히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변수는 LG에너지솔루션과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의 소송에서 지난해 예비 패소 판결을 받았다. 판결이 확정되면 최악의 경우 조지아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다음 달 10일 최종 판결을 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입장이 확고해 극적인 합의 가능성은 현재로선 작다. 하지만 ‘기아-애플’ 협력이 현실화하면 미국 정부 쪽에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설 가능성이 있어서 SK이노베이션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조지아주 하원의원들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책임 있는 해결책을 찾아 달라”는 서한을 보내 양사의 합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공장 가동 여부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면서 미국 내 고용 등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ITC의 결정을 대통령이 거부한 사례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3년 ITC가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에서 삼성전자 손을 들어주고 애플 제품 수입 금지를 결정하자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ITC도 결국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기구”라며 “미국에 유리하다면 정치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