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은 규모가 작아도 ‘사장님’이다. 스스로 일을 결정하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근로자에 비해 사회적 보호가 덜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영업자는 번듯한 사장님보다 각종 시장에서 밀린 약자가 가득하다. 준비 없이 떠밀려 온 까닭에 당연히 전문성도 떨어진다. “더는 갈 곳이 없어 치킨을 튀긴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들의 앞날은 더 고통스러울 전망이다. 이상적이라면 정부가 병든 자영업자에게 ‘링거’를 꽂아 회생을 시켜줘야 하지만, 이제 그 단계를 벗어나면서 자영업 구조조정이 훨씬 강하고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아예 한계에 직면한 사업장은 폐업과 재교육, 사회안전망으로 퇴로를 뚫어주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가 나온다.
“살리는 것도 능사 아니다”
우리나라 자영업 비중은 20%대로 전 세계적으로 높은데, 여기에다 질(質)도 나쁜 편이다. 경쟁력을 갖고 뛰어든 사람보다 고령층, 실업자 등 취업 시장에서 밀려 어쩔 수 없이 종사하는 ‘저생산성 계층’이 많다. 전문성이 없는 탓에 대부분 영세 자영업자에 머무른다. 또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도소매·음식업에 몰리면서 어려운 사람들끼리 제 살 깎아먹기의 경쟁 고통도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등 경제 위기가 오면 속수무책으로 가장 먼저 쓰러진다.
코로나에 따른 급속한 변화의 바람은 이들에게 직격탄이 돼 버렸다. 비대면 증가, 온라인 구매 활성화 등이 속속 진행되면서 정부가 정통 자영업자에게 지원을 해줘도 줄폐업을 막는 데 역부족인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치면서 자영업의 자생 단계도 지났다는 냉정한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19일 현재 자영업을 “수영도 못하는데 바다에 뛰어드는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포화 상태의 시장에 자영업자들이 머물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렵더라도 다른 쪽으로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장의 변화를 막거나 조정하기 어렵다”며 “경쟁력 없는 기업에 링거를 꽂아주는 것보다 다른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사회가 자영업 시장에서도 밀린 이들을 적극 안아야 한다. 개인의 경쟁력이 없어 실패했다고 모른 척하는 것은 안 된다. 곧바로 재교육으로 경쟁력을 강화해 다른 업종의 창업을 돕거나 취업 시장 속으로 재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 줘야 한다.
다음 진로를 결정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근로자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안전망에 자영업자도 서서히 포함시켜야 한다. 정 교수는 “당장은 자영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폐업 지원, 업종 전환 등 연착륙이 필요하지만 복지 제도에서 이들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인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국민연금 등은 일부 자영업자도 가입할 수 있지만 근로자에 비해 ‘사업주’로 부담해야 할 부분이 많은 반면 혜택은 적어 가입률이 낮다. 전통적으로 자영업자는 근로자보다 결정권이 있다는 인식이 있어 근로자 중심으로 안전망이 설계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영업자가 근로자 못지않은 사회적 약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 2025년까지 고용보험의 틀 안에 넣는 것을 계획 중이다. 문제는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을 강제로 가입시킬 수 없고, 근로자와 형평성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영업자까지 사회안전망에 넣으면 필요 재원이 늘어나면서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
만만치 않은 작업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부터 당사자, 관계 부처 및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가입 방식과 적용 시기, 구체적 운영 방안 등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2022년 중에는 단계별 적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생존 가를 온라인화
구조조정 중에 교육을 하면서 경쟁력 강화가 가능한 사업장도 골라내야 한다. 이들은 폐업보다 재창업을 유도해 자영업 시장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온라인화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 앞으로 자영업은 온라인화 여부가 생존을 가르는 핵심이 될 수 있다.
온라인화를 어렵게 하는 기회 비용부터 줄여야 한다. 플랫폼 수수료와 불공정 거래 개선 등이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온라인플랫폼 사업자와 입점 소상공인 간 상생협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상생협력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플랫폼 기업 등을 겨낭한 이익공유제 도입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자영업자·배달업자의 수수료를 인하하는 등 구체적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이익공유제의 경우 재산권을 침해하는 반시장적 행위라는 비판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지가 과제다.
자영업자 스스로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더는 오프라인 매장 소재지에 의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박주영 숭실대 중소벤처기업학과 교수는 “자영업의 업종이 다양한 만큼 획일화된 지원보다는 업종별로 세분화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며 “관련 정부 지원 사업이 늘어나야 하지만 디지털 개념조차 모르는 자영업자들이 마구 뛰어드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에 대한 인식 전환 교육, 오프라인 경쟁력 강화도 병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세종=전슬기 신재희 기자 sgjun@kmib.co.kr
[기로에 선 자영업, 변화만이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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