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피해자, 박원순 성추행으로 상당한 고통 받은 건 사실”

입력 2021-01-15 04:04
동료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이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사진은 피해자 측을 대리한 김재련 변호사가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 연합뉴스

“‘넌 남자를 모른다. 남자를 알아야 시집을 간다’며 성관계 과정을 얘기해줬다는 진술이 있었다. 피해자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부장판사 조성필) 심리로 열린 서울시장 비서실 전 직원 A씨의 준강간치상 혐의 공판에서 재판부가 읽은 선고문 내용의 일부다. A씨는 지난해 4·15총선 전날 회식 후 만취한 비서실 동료 B씨를 성폭행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힌 혐의로 이날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B씨는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던 인물이다.

이날 재판부는 공판 과정에서 제출된 B씨 측 증거를 토대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인정했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수사를 종결했지만 법원이 별건에서 예상 못 한 방식으로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내놓은 셈이다.

재판부의 박 전 시장 관련 언급은 “B씨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때문”이라는 A씨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재판부는 B씨가 정신과 상담치료를 시작한 지난해 5월 초 A씨 범행에 따른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호소했고,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술은 5월 중순부터 나왔다고 논박했다. 시간의 선후 관계를 볼 때 A씨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비서실 근무 1년째부터 박 전 시장에게서 ‘냄새를 맡고 싶다’거나 ‘사진을 보내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는 B씨의 상담 내용을 밝혔다. 재판부는 B씨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로 힘들어했지만, 그에 앞서 A씨의 범행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B씨의 신체 일부를 만진 사실은 있지만 강간을 한 적은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는 수사 단계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강간 피해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한다”며 이를 기각했다. 유전자검증에서 체액 등 증거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A씨 주장도 “피해자가 사건 직후 30분 동안 샤워를 했고, 유전자 감정 의뢰가 사건 며칠 이후 이뤄졌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를 대리한 김재련 변호사는 선고 직후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을 고소했지만, 사망으로 법적 호소의 기회를 잃었는데 재판부가 일정 부분 판단해주신 게 피해자에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