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동의 안 받아 청구권 유효”… 법원이 본 한일 협정

입력 2021-01-12 04:07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측의 첫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국가가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개인 청구권을 직접 소멸시킬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애초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배상 논의가 포함된 적 없고, 박근혜정부 당시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는 게 1심 재판부의 핵심 논리였다. 이는 일본 정부가 취해 온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11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한일 청구권협정과 위안부 합의의 법적 성격을 규명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권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을 “일본제국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협상이 아니었다”고 규정했다.

당시 청구권협정은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미국 등 연합국과 일본이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거, 한·일 양국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성격이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반인도적 전쟁범죄인 위안부 동원은 애초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일본이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한 권리문제 해결과 법적 대가 관계에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일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고도 했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대한 성격 규정도 없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이 협정에 포함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었다. 판결은 대통령이나 관계 행정부서의 의견이 사법부의 판단을 구속할 수 없다는 점,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명시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 여부를 대한민국 정부에 위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가 2017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평가한 보고서가 “양국 외교장관 공동발표와 정상의 추인을 거친 공식적인 약속이며, 그 성격은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라고 결론내린 일도 판결문에 언급됐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