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에서 각종 논란으로 탈당 또는 제명된 의원이 불과 7개월여 만에 6명에 달하지만 국회 차원의 징계는 감감무소식이다. ‘꼬리 자르기’ 제명을 하거나 의원이 탈당한 뒤 여야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보여주기식 제소만 할 뿐 실제 징계는 피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비난여론 등 ‘소나기’를 일단 피한 의원들이 나중에 슬그머니 복당하는 경우가 많아 국회가 윤리특위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1대 국회 윤리특위에는 모두 8건의 징계안이 제출됐지만 10일 현재 모두 계류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용민 윤호중 장경태 윤미향 윤영찬 황희 의원 6명이 국민의힘으로부터 제소됐고, 국민의힘에선 유상범 의원과 탈당한 박덕흠 의원 등 2명이 민주당의 징계 청구로 윤리특위에 회부됐다.
징계안 8건은 대부분 여야 정쟁의 산물이다. 국민의힘은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상임위에서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과 보좌진에게 인격 모독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윤 위원장을 제소했다. 민주당 역시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민주당 의원 명단을 공개했지만 해당 의원이 아닌 동명이인임이 밝혀지자 유 의원을 제소했다.
여야는 서로의 잘못을 따지며 상대방을 윤리특위에 제소하지만 막상 징계안 심사를 위한 회의를 열지는 않고 있다. 윤리특위는 지난해 9월 위원장과 간사 선출을 위한 첫 회의만 열었을 뿐 현재까지 징계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4년간 47건의 징계안이 올라왔으나 실제 징계는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여야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사이 각 당은 제명 등으로 빗발치는 비난여론을 일단 피하고 보자는 행태만 반복하는 셈이다.
윤리특위는 국회의원의 윤리의식 제고와 자율적 위상 정립을 위한 특별위원회다. 의원의 윤리 심사는 물론 공개사과부터 제명까지 징계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의원들의 소극적 태도로 실효성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1948년 제헌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모두 360건의 징계안이 발의됐지만 그 가운데 277건이 폐기됐다. 실제 가결된 징계안은 6건으로 1.7%에 불과했다. 2011년 강용석 당시 무소속 의원이 성희롱 발언으로 제소됐는데 제명안은 부결됐고, 겨우 30일간 출석 정지를 받은 게 마지막 특위 의결 사안이다.
이처럼 윤리특위가 무력화된 데에는 제도적 한계 탓도 있다. 국회법에 따라 심사 전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의견도 청취해야 하는데 이 기간만 최소 2개월이 걸린다. 자문위가 징계 의견을 내도 다시 윤리특위에서 징계를 미룬다면 의원에 대한 징계는 이뤄지지 않는다. 회부된 안건을 윤리특위에서 가결하더라도 징계를 위해서는 또 본회의까지 통과해야만 징계안이 확정된다.
여야는 윤리특위 제도 개선에는 입을 모으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정반대다. 민주당이 지난달 통과시킨 ‘일하는 국회법’에는 당초 비상설 윤리특위 대신 법제사법위원회를 개편한 윤리사법위원회에서 의원 징계안 심사를 담당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법이 본회의를 통과할 땐 여야 합의로 이 내용이 송두리째 삭제됐다. 한 윤리특위 위원은 “현 정국에서 여야가 윤리특위를 건드리기는 힘들 듯하다. 다음 정기국회 때나 돼야 논의가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