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쌀 동냥까지…” 코로나 생계 절벽에 선 취약계층

입력 2021-01-11 00:04

콜센터 상담사, 프리랜서 등 ‘코로나19 취약계층’은 지난해 더욱 가혹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상담사들은 ‘구로콜센터 집단감염 사태’ 이후에도 집단감염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방과후강사들은 1년 내내 사실상 실직 상태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코로나19가 이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의 민낯을 드러냈지만 지난 1년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터질 게 터졌구나’ 했어요. 이전에도 독감이 한번 유행하면 다같이 앓아 누울 정도였거든요.”

국민일보가 10일까지 만난 콜센터 상담사들은 150여명의 관련 확진자가 발생했던 지난해 3월 ‘구로콜센터 집단감염 사태’를 담담하게 회고했다. 이들은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했던 지난해 1월부터 이미 콜센터 집단감염을 우려했다고 했다. 한정된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감염병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담사들은 1년 내내 크고 작은 콜센터발 집단감염이 발생했지만 3밀(밀접·밀집·밀폐) 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상담사 간 간격을 120㎝ 이상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칸막이조차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콜센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업무 도중 소음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방역의 기본인 환기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상담사 심명숙(44·여)씨는 “실제 상담사 간 거리를 쟀더니 66㎝였다”며 “(칸막이용) 아크릴이 부족하다고 마분지로 칸막이를 만들고 그마저 상담사를 감시하기 위해 높이를 낮춰 설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상담사 염희정(45·여)씨도 “최근 한 콜센터에서 상담사 1명이 확진받아 근무자 65명 전원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며 “그만큼 3밀 환경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지난달 콜센터 상담사 3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72.2%)은 “근무환경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이후 근무환경이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10명 중 8명(80.3%)이 변화가 없거나 열악해졌다고 답했다. ‘사무실, 작업장, 공용공간 등을 정기 소독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 53.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니 상담사들은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직장폐쇄 등 확진에 대한 비난이 직원 개인에게 몰렸기 때문이다. 상담사 김라미(44·여)씨는 “‘코로나19 감염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는 사측의 압박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을 때에도 집과 콜센터만 왕복했다”며 “상담사들은 코로나19 정부 지침이 나올 때마다 병적으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감정노동의 강도는 더 극심해졌다. 코로나19로 상담 등 각종 대면 업무가 중단되면서 콜센터가 유일한 창구가 된 회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심씨는 “불만을 가진 고객이 ‘너희 콜센터 코로나 걸려버려라’라고 폭언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상담사 사이에선 ‘우린 1년 동안 국민 욕받이였다’고 자조 섞인 말이 나오곤 한다”고 씁쓸해 했다.


방과후강사 등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 직업군이다. 전국서비스산업노조가 지난해 10월 방과후강사 12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과후강사의 월평균 수입은 2019년 216만원에서 2020년 2학기 기준 12만9000원으로 급감했다. 10명 가운데 8명(79.5%)은 2학기 월 소득이 ‘0원’이라고 답했고, 10명 중 9명(90.0%)은 “사실상 실업상태”라고 했다. 학교 측과 계약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방과후수업이 중단된 탓이다.


제주도에서 컴퓨터 강사로 일했던 A씨(42·여)는 아이 셋을 기르며 혼자 생계를 꾸려 왔지만 방과후수업이 전면 중단되며 쌀 동냥을 다닐 정도로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A씨는 “라면조차 제대로 사먹기 어려워져 결국 집도 팔고 차도 팔았다”며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려 해도 이전에 일정한 수입이 있어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혹시 방과후수업이 재개될까 하는 마음에 쉽사리 다른 일자리나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의 한 학교에서 방과후강사로 근무한 박모(49·여)씨는 “개학이 1주일, 2주일 미뤄지다 결국 1년을 통째로 쉬었다”며 “버티다 못해 일단 2월까지만 온라인 학습지 교사 일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며 학교의 민낯을 봤다고 했다. 방과후강사로 채용해 업무를 지시할 땐 학교 직원처럼 책임을 떠맡기다가 코로나19로 수업이 중단되자 개인사업자 취급을 하며 고용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교육청과 학교가 방과후강사 전반을 관리해 왔으면서 막상 수업이 중단되자 학교는 교육청에 문의하라고 하고, 교육청은 학교장 권한이라고 하며 책임을 떠넘겼다”며 “누구든 계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이번 사태를 겪으며 아무도 이 일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며 “18년 동안 열심히 가르쳐 왔는데, 직업에 대한 자부심마저 잃어버린 것 같아 속상하다”고 했다.

정우진 최지웅 기자 uzi@kmib.co.kr

[코로나 1년,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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