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 자평하는 한국의 디지털 역량은 두 가지 모습을 띠고 있다. 100% 가까운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1위 수준의 인프라를 갖췄다는 평가를 부른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으로 눈을 돌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산업계의 ICT 활용도는 선진국 중 최하위 수준에 그치고 있다. 날이 잘 선 칼을 들고 뭔가를 제대로 썰지조차 못하고 있는 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독특한 구조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한국은 경제활동인구 5명 중 1명이 자영업자에 속할 정도로 자영업 비중이 크다. 반면 자영업의 ICT 활용도는 타 산업에 비해 저조한 편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자영업의 타격이 유난히 컸던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뉴딜’도 이러한 경제 구조적 특성을 간과하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인터넷 접근성은 부동의 1위다. 한국의 가정 내 인터넷 보급률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90%를 넘어섰다. 2019년 기준으로는 99.7%까지 보급률을 높였다. 다른 국가들도 보급률이 많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99%를 넘는 곳은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반면 산업계의 ICT 활용도는 이 실적과 대비된다. 한국 내 10인 이상 고용원을 둔 사업체 중 웹사이트·홈페이지를 활용하는 곳의 비중은 2018년 기준 65.4%에 불과하다. 사업체 10곳 중 3곳 정도는 홈페이지조차 없다는 것이다. 타국 상황과 대비된다. 한국의 비중은 OECD가 집계한 30개국 중 27위 수준에 불과했다. 각각 1, 2위인 북유럽 국가 핀란드(95.6%) 덴마크(95.6%)와 비교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보다 비중이 낮은 국가는 그리스(64.8%) 라트비아(63.0%) 포르투갈(62.7%) 정도밖에 없다.
한국의 위상이 왜 이렇게 낮은지를 명확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경제 구조를 살펴보면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단초가 보인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수는 가장 최근 집계인 지난해 11월 기준 551만1000명에 이른다. 전체 경제활동인구(2704만7000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4%나 된다. 도·소매업이나 숙박·음식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다. IC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더라도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업종이기도 하다. 규모가 영세할수록 ICT를 활용할 여력이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는 언택트(비접촉) 기술 발달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 전환기에 가속도를 붙였다. 자영업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살아남으려면 ICT를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마뜩한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해 디지털 뉴딜을 추진하겠다면서 올해만 해도 7조6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대다수 예산의 초점이 제조업 등 기존 주력 산업의 디지털화에 맞춰졌다. 자영업자보다는 경제성장률 파급 효과가 큰 쪽에 힘을 실었다. 정부 관계자는 “제조업 중심인 것은 맞지만 디지털 전통시장 100곳, 스마트 상점 10만개 조성과 같은 대책도 병행해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