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학대 사망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는 형량을 강화하는 내용은 제외됐다. 아동학대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현장과 법조계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건 예방은 경찰 등 현장 인력의 전문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회에서 통과된 이른바 ‘정인이법’에는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이 아동학대를 신고할 경우 지방자치단체나 수사기관이 즉시 조사 또는 수사에 착수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아동학대치사 형량 하한을 5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높이는 법안은 논란 끝에 통과되지 않았다. 앞서 전문가들은 형량을 섣불리 높일 경우 오히려 수사기관의 입증 책임이 더 무거워지는 등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제기해왔다.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살인죄 형량 하한이 5년인데 아동학대치사를 상향하는 것은 균형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형량 하한이 대폭 높아져 유죄의 경우 무조건 실형을 줘야 하는 경우가 있다. 판사 입장에선 애매한 사건의 경우 무죄를 선고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대부분 아동학대 사건은 증거가 없다. 형량 하한을 높여버리면 가해자들은 무조건 부인을 하고 피해자를 공격하게 된다. 결국 피해자가 더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신고가 1년에 2번 이상 제기될 경우 부모와 아동을 즉시분리하는 내용도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현장에서도 졸속 입법 사례로 꼽혔던 내용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2회 이상 학대 피해를 받은 아동은 2776명이었는데 쉼터 수용 가능 인원은 1000명 정도다. 1회 신고에도 학대 상황이 심각할 수 있는데 기계적으로 2번부터 분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현장에서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학대인지 훈육인지 명확히 판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경찰 조직에서 그간 아동학대 담당 경찰을 각종 쟁송에서 방어해주지 못했다”며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정인이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앞서 전북에서는 경찰이 아동학대 신고자의 신원을 노출해 가해자가 의료진에게 협박을 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제도 손질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전문성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인이의 양부모에 대한 첫 재판은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신혁재) 심리로 오는 13일 열린다. 검찰은 양모 장모씨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했는데 향후 재판에서 살인죄를 추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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