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진행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밝힌 대남, 대미 메시지는 ‘한·미가 앞으로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거기에 맞춰 맞대응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하면서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으로 상대하겠다”며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남측을 향해선 “우리의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상대하겠다”면서도 남측 하기에 따라 3년 전의 평화 국면이 재연될 수도 있다고 했다. 비핵화 협상이 장기 교착된 상태에서 북한이 일단 도발의 길을 걷지 않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오는 20일 들어서는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를 향해 미국이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내놓으면 북측도 호응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점이 눈에 띈다.
하지만 북측이 협상에 응할 여지를 남기면서도 ‘게임 체인저’급 전략 무기 개발 계획을 줄줄이 내놓은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김 위원장은 핵잠수함과 극초음속 무기 개발, 전술핵무기 경량화, 사거리 1만5000㎞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타격 능력 고도화 등의 목표를 내걸었다. 자신들은 갖가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겠다면서 남측에는 무기 개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지를 요구한 것도 이율배반적이다. 그런 으름장과 모순적 행태가 협상 카드가 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북측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케 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런 위협이 무서워 미국이 대화에 나서리라고 판단했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그런 위협이 제재 강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대북 매파에게 악용될 게 뻔하다. 동북아 군비증강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북측은 이런 현실을 직시해 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대신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한·미는 북측이 대화의 문을 열어둔 만큼 비핵화 회담이 조기에 재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코로나19 수습이나 이란 핵 협상 복귀 문제 등으로 대북 이슈가 뒷전으로 밀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칫 대화 교착 상태가 더 길어질 경우 북측의 오판을 부를 수 있어서다. 기왕이면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 초반에 북측에 비핵화 대화 의지가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게 가장 좋다. 우리 정부는 북·미 대화를 촉진시킬 수 있도록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데 묘안을 짜내야 한다. 북측도 금강산 독자 개발 등으로 우리 국민을 더 이상 자극하지 말고, 우선 가능한 부문부터 남측과 적극 협력하기 바란다.
[사설] 북, 전략 무기로 위협할 게 아니라 대화의 길 나설 때다
입력 2021-01-11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