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로움을 보라

입력 2021-01-12 03:08

제가 섬기는 교회에는 교회가 오랫동안 보관해온 100년 넘은 몇 권의 고서(古書)가 있습니다. 이 책들을 가만히 묵상하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시작하는 일만큼 그것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게 됩니다.

오늘 성경 본문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에는 바로 그 관리에 실패한 사람이 나옵니다. 한 청지기가 주인이 맡긴 재산을 잘 관리하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놓입니다. 이런 위기 때에 이 청지기에게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빚을 탕감해 주자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쫓겨나도 그들이 은혜를 잊지 않고 어려울 때 도울 것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청지기는 기름과 밀을 빚진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주며 다시 증서를 씁니다.

청지기의 이러한 월권은 곧 주인에게 탄로 납니다. 그런데 주인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오히려 그를 칭찬합니다. 주인의 관점은 감히 우리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8절 말씀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청지기가 불의한 일을 했지만, 이제 곧 자신이 해고될 것이라는 위기의식 가운데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에 주인이 오히려 지혜롭다고 칭찬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니모스’라는 말은 때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말은 ‘미래의 시간을 인식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가 나오는데 그 부자는 밭에 소출이 풍성해 곡식 쌓아둘 곳이 없자 사용하는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지을 계획을 세우며 자족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여기서 어리석음이란 우리 인생의 유한한 때를 인정하지 못하며 착각 가운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지혜는 우리 인생을 ‘재물’이라는 관점에서 살 것이 아니라, ‘때’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짧은 인생에서 때의 소중함을 알고 우선적인 가치를 마음에 염두에 두며 결단력 있게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섬겼던 교회에 연로하신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자녀들을 키우셨는데, 아들이 집을 떠난 후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심방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속 섞이는 아들이지만 보고 싶어요. 목사님,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해주는 게 소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사님 건강이 안 좋아지더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3일 동안 장례를 치르는데 상주였던 아들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화장예식을 마치려는데 누군가 달려오더니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아들이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겁니다. 아들은 “어머니께 더 잘해드리려고 그동안 찾아뵙지 못했어요”하며 통곡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사랑해도 부족할 만큼 시간이 짧습니다. 우리 주변 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내 신앙 양심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일을 미루지 말고, 그 일을 해야 할 때 하십시오. 특별히 코로나19로 지친 분들에게도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손길을 펼치십시오.

강성률 수원종로교회 목사

◇수원종로교회는 수원의 첫 개신교회로 화성행궁 앞 수원 종로네거리에 위치한 127년 역사의 교회입니다. 3·1운동 애국지사들을 많이 배출했고, 오랜 역사 속에 수원 지역에서 성장한 여러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올해는 ‘비전관’을 건축해 다음세대를 세우고 세상과 소통하는 ‘문화선교 사역’을 시작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