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위안부 동원은 반인도적 범죄, 국가면제 대상 아니다”

입력 2021-01-09 04:02
위안부 피해자측 김강원 변호사가 8일 오전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에서 승소한 뒤 법정 입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측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의 핵심은 반인도적 국제범죄를 국가면제 원칙의 예외로 볼 수 있는지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8일 위안부 피해자 측 승소로 판결하면서 “(위안부 동원은) 일본 제국에 의해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국가면제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봤다.

국가면제의 원칙은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의 주권적 행위를 상대로 재판을 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가 소송 각하를 주장하면서 줄곧 앞세운 논리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측이 2013년 8월 ‘피해자 1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조정절차와 2016년부터 이어진 법정소송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국가면제 원칙만을 반복해서 강조해왔다. 앞서 대법원이 2018년 원고 승소를 확정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은 일본 정부가 아닌 전범기업을 상대로 해 국가면제 원칙이 쟁점이 되지는 않았다.

이날 재판부는 국내 법원으로서는 처음 ‘반인도적 국제범죄에는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판시를 내놨다. 국가면제 원칙의 예외를 두지 않을 경우 국제협약을 위반해 반인권적인 중범죄를 저지른 국가를 제재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이유였다. 특히 재판부는 일본 정부를 겨냥해 “국가면제 이론은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국가에 배상과 보상책임을 회피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할 권리가 남아 있다는 의미다. 재판에서 언급된 적 없는데도 직권 판단한 쟁점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2019년 12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며 위안부 피해자의 대일 배상청구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서면이 아닌 구두 합의였고, 국무회의나 국회 동의 절차가 없어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헌재는 위안부 피해자 측의 ‘한·일 합의 위헌’ 헌법소원을 각하하면서도 유의미한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1심 재판부도 이 같은 선례들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본 법무성이 2주 내 항소하지 않으면 재판은 이대로 확정된다. 일본 측이 끝내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국내의 일본 정부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가능해진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국내 일본기업 재산을 상대로 현금화 절차를 밟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측을 대리한 김강원 변호사는 이날 “강제집행 가능한 재산이 있는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