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러 간 자녀들, 안전하게 귀가해야”

입력 2021-01-08 03:03
한국기독교장로회 부총회장 김은경 익산중앙교회 목사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올바른 제정을 촉구하며 4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신석현 인턴기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총회장 이건희 목사) 첫 여성 부총회장인 김은경 익산중앙교회 목사는 지난 3일부터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다. 김 목사는 “일하러 간 아이들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엄마의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난 김 목사는 비닐 천막 안에서 조용히 묵상 중이었다. 영하의 칼바람이 천막 벌어진 틈으로 들어왔다. 단식농성 4일째인 김 목사는 몸이 많이 쇠약해진 것 같다는 걱정에 “안쪽 농성장에는 고 김용균씨 어머니를 비롯해 27일째 단식농성 중이신 분들도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김 목사는 “매년 2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는다. 너무 많은 숫자에 놀랐다”며 “우리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일깨우는 이정표를 세우는 의미로 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단식 농성에 동참하는 게 이분들께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덧붙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대부분의 대형재해 사건이 특정 노동자 개인의 위법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기업 내 위험관리시스템의 부재, 안전불감 조직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목사는 “산업현장에선 사고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고 모든 과정을 피해자 가족이 감당하고 있다”며 “자녀를 잃고도 애도할 틈 없이 우리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으며 외로운 싸움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인구의 80%가 노동자다.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재수 없어서 일어난 일로 치부하지 말고 산업현장의 구조적 문제, 부조리함이 얽힌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는 7일 법안소위를 열어 50인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을 3년 유예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처리했다. 김 목사는 “정부와 재계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되면서 원안에서 많이 후퇴했다”며 “갖은 유예조건으로 본래 취지를 퇴색시켜선 안 된다. 기업처벌법이 기업보호법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가 속한 기장도 이건희 총회장 명의로 성명을 내고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는 너무나 지당하고 준엄한 예수 그리스도의 물음 앞에 다시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본다”며 “어떤 규모의 사업장이든 어떤 고용조건이든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온전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이홍정 목사)도 기자회견을 통해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NCCK는 “정부·여당이 대기업을 비롯한 사용자 입장에 치우친 법 제정 논의를 진행하려 한다”며 “경영책임자의 의무 규정, 인과관계 추정 조항, 징벌적 손해배상, 50인 이하 사업장 적용 등에 대한 어떤 무력화도 허용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인호 우성규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