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허기진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1월은 선물 같은 시간이 될 듯하다. 이달 무려 세 차례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 김선욱(33)이 있어서다.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 독주회(11일), KBS 교향악단과 협연(12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의 듀오(19일) 등 굵직한 무대를 선보인다.
김선욱은 7일 본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쉬지 않아도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라면서 “1월은 음악가로서 내게 중요한 시간이 될 것 같다. 매 공연에 100% 이상을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1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무대는 김선욱에게 특별하다. 이날 지휘자로 공식 데뷔하기 때문이다. 2010년 영국 왕립 음악원 지휘 석사과정을 밟는 등 기량을 쌓아 왔지만 그의 본격적인 지휘 무대는 처음이라 팬들의 시선이 쏠려 있다. 이날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7번. 그는 협주곡에선 협연도 동시에 한다. 그는 “폭풍전야인 듯 설레면서도 떨린다”면서 “완벽함에 얽매이기보단 자신감과 원동력을 얻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욱은 원래 지난해 4월 영국 본머스 심포니 공연에서 지휘자로 데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취소돼 이번에 한국에서 데뷔 무대를 갖게 됐다. 공연 프로그램도 대편성인 브람스 교향곡 2번 대신 상대적으로 소편성인 베토벤 교향곡 7번으로 변경됐다. 팬데믹으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정평이 난 그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베토벤의 음악에 대해 그는 “셰프로 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최상의 재료”이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신비한 마법 같다”고 말했다.
그런 김선욱도 지휘봉을 들고 만난 베토벤은 새로웠다. 그는 “오케스트라로 접한 베토벤은 피아노로 호흡할 때보다 훨씬 광활했다”며 “7번은 특히 원시적 리듬 향연이 선율보다 주가 되는 곡이다. 심장박동 같은 생동감을 구현하고 싶다”고 했다.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18살 최연소로 우승하며 화려하게 세계 무대에 데뷔한 김선욱은 그동안 지휘자의 꿈을 감추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오래도록 소원하던 일이어서다. 김선욱은 “피아노 연주가 직관적이라면, 지휘는 각양각색 악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고 했다.
물론 연주자로서 독주회와 정경화와 듀오 무대도 소중하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정경화와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독주회에서는 베토벤 안단테 파보리와 후기 피아노 소나타 전곡(30~32번)을 연주한다.
연주자로서 오는 6월 3~5일 베를린필과의 협연 데뷔 무대도 주목된다. 앨런 길버트 지휘로 한국 작곡가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세차례 선보인다. 2년 전 베를린필 러브콜을 받았다는 김선욱은 “현대곡을 연주하는 게 21세기 연주자의 의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른 곡은 몰라도 진은숙 선생님의 곡은 내가 세계에서 가장 잘 치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지난해 11월 입국한 김선욱은 이달 말 재출국 해 유럽 무대를 누빌 예정이다. 지난해 취소된 본머스 심포니와의 지휘 무대도 올 10월 예정돼 있다. 코로나19로 올 5월 LA필 협연 등 일부 공연은 취소됐지만 김선욱은 고삐를 바짝 쥘 예정이다. “음악가는 미래보단 현재에 충실해야 해요. 지금의 연주를 잘해야 다음 무대에 설 수 있거든요. 저는 그래서 주어진 연주에 혼신의 힘을 다하려 합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