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정모씨는 2년의 고생 끝에 한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업무가 안정적이라 차곡차곡 미래를 쌓아올릴 기대에 부풀었다. 정씨는 매달 가족에게 돈을 보내면서도 알뜰하게 저축을 했다. 1억원을 모아 대출을 더하면 작은 집도 장만할 수 있겠다는 꿈도 꿨다. 그러나 정씨는 최근 악몽을 꾼다. 부모님의 자금을 받아 이미 부동산, 주식에 뛰어들어 수억원대로 재산을 불렸다는 친구들의 소식이 매일 들려오기 때문이다. 정씨는 생애 처음으로 어떻게 해도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 수 없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출발선이 평생 좁혀질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실의에 잠겨 있다.
‘노력이 곧 성공’이라는 공식이 사라지고 있다. 가난을 극복한 자수성가 얘기가 없어지고 있다. 자산이 다시 자산을 불리는 시대에서 영웅담은 동화 속 이야기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가득하다.
7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여론분석팀이 ‘나라경제 12월호’를 통해 조사한 결과 30세의 42.8%은 개인의 노력에도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없다고 답했다. 노력을 통해 지위를 높일 수 있다는 대답은 21.4%에 불과했다. 반면 기성 세대는 달랐다. 60세의 32.0%는 “노력하면 지위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30세와 60세 각각 500명이 참여했다.
객관식으로 물은 성공의 중요한 요인 질문에서도 30세 응답자들은 집안 배경(30.2%)을 1순위로 꼽았다. 그다음이 재능(23.5%) 인맥(12.1%) 노력(11.0%)으로, 노력은 거의 하위권이었다. 30세는 금수저나 선천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 주로 성공할 것으로 본 셈이다. 60세는 집안의 배경(19.1%)보다 재능(23.7%)을 1위로 꼽았다.
젊은 세대는 현재 자신이 처한 경제 상황도 암울하게 느끼고 있었다. 30세의 42.4%는 “상황이 나쁘다”고 응답했다. 이에 불투명한 미래보다 현재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30세는 현재 행복을 위한 소비(40.8%)가 미래 준비를 위한 소비(39.4%)보다 컸다. 다만 30세에도 아직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들 중 절반가량(49.2%)은 그래도 30년 후에는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KDI 여론분석팀은 “우리 사회 구조에 대해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좌절감을 읽을 수 있는 조사 결과였다”며 “공정한 경쟁 환경으로 계층 상승 가능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