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이라는 이름의 체벌과 가정폭력에 관대한 정서, 허술한 아동보호체계와 예산·인력 부족으로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소풍을 가고 싶다는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울산 아동학대 사건’ 재판부는 1심 선고공판에서 이같이 말했다. 극형 선고만으로는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최근 반복된 아동학대 사건에서 경찰과 관련 기관은 수차례 의심 신고에도 선제적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 사건이 터진 뒤 국회가 형량 강화 법안을 쏟아내는 것도 되풀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건의 사전예방이 잘 이뤄지지 않았던 구조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캐리어에 7시간 넘게 갇혔다가 사망한 A군의 경우 사망 1개월 전 의료진 신고와 경찰 조사가 이뤄졌다. 정인이 사건에서도 경찰은 세 차례나 신고받았지만 사건을 막지 못했다. 국회에는 아동학대치사의 형량 하한선을 높이는 법안들이 발의됐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아동학대 사건에 처벌 강화를 되풀이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 제정된 아동학대처벌 특례법에서는 아동학대치사에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한다. 이미 현행법상 기존 아동학대치사에도 살인죄에 준하는 형량을 선고할 수 있다.
형량 강화가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형량의 하한선 자체를 높여버리면 가해자들은 무조건 부인을 하고 나선다”며 “강력 처벌도 필요하지만 여론 잠재우기식의 무더기 입법은 현장의 혼란을 극심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인이 사건을 막지 못한 데는 경찰의 아동학대 사건 전문성 부족이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일선 경찰에서는 현장 판단에 따라 격리조치에 나섰는데 이후 각종 소송 등에 휘말렸다는 토로도 나온다. 실제 학대예방경찰관(APO)은 대표적 기피 보직으로 꼽힌다.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격리가 현장에서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 등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경찰의 긴급임시조치(격리 등)를 가해자가 어겨도 과태료만 부과된다며 체포 등의 권한 행사도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찰에 법원을 거치지 않는 행정적 격리 권한을 주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 조직에서 아동학대가 전문 영역으로 평가받고 재량 폭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법과 가이드라인에 구체적인 요건을 열거해 경찰이 아동학대 범죄 가해자를 의무적으로 체포하도록 규정한다.
경찰과 각종 기관에 분산된 권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조사와 수사는 충분히 전문성을 훈련받은 경찰이, 피해자 지원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하게 해서 서로 일을 미루지 않고 사건을 지원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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