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왜 갑자기 한국 국적 선박을 나포했을까.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 4일 화학물질 수송선 ‘한국케미’를 나포한 후 해양 오염을 조사하기 위해 억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케미호 선사인 디엠쉽핑 측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디엠쉽핑 관계자는 5일 “해양 오염이 안 되는 이유는 매년 한 번씩 검사를 받고 있고, 외부 충격이 없으면 (오염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3개월 전에 정밀 검사를 했고, 물을 버리는 것도 미생물을 걸러서 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 내 동결된 이란중앙은행 자금 70억달러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란 정부가 그동안 한국에 이 자금을 이란에 돌려줘야 한다고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 계좌에는 원유 수출대금 70억달러(약 7조6000억원)가 동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이란 제재를 우회하면서도 양국의 물품 거래를 위해 사용되던 이 계좌들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거래가 중단됐다.
특히 양국이 동결 자금을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협의하던 중 한국 선박을 억류한 것에 대해 협상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한국에 동결된 자금을 코로나19 백신 구매에 사용하는 방안을 한국 정부와 협의해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5일 “이란 정부가 ‘코백스 퍼실리티’(코로나19 백신 공동 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를 통해 백신을 확보하려고 했고 이를 위한 대금을 한국 원화 자금으로 납부하는 것을 놓고 미 재무부와 우리 정부가 협의를 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에 대해 미 재무부로부터 특별승인을 받았고, 특별승인에 따라 코백스 퍼실리티에 대금을 지불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란이 한국 내 은행에 동결된 자금을 백신 대금으로 코백스 측에 입금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고, 정부는 미국 재무부와 협의를 통해 백신 대금에 대해 제재 예외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만 원화로 예치된 자금을 코백스에 송금하려면 먼저 미국 은행에서 달러화로 환전해야 한다. 이때 자금이 다시 동결될 가능성을 이란 측은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정부는 동결 자금과 나포와의 연관성은 부인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선박 억류와 원화 대금을 연계해서 협상하자는 의도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이란 측에서는 ‘그건 절대 아니다’고 1차적 대답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선박 나포 사건이 이란이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로 높이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발표한 직후 발생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우라늄 농축, 한국 선박 나포 등 이란이 잇단 위협 행위를 통해 곧 들어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압박해 핵 협상을 복원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란 정부는 전날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로 하는 절차가 포르도 농축시설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이를 확인했다. 이란의 행동은 핵 합의에서 제한한 농축 한도 3.67%를 크게 넘어서는 것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5일 성명을 내고 이란에 한국 유조선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이란 정권은 국제사회로부터 대이란 경제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명백한 시도의 일환으로 페르시아만에서 항행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위협을 계속적으로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세정 김영선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fish813@kmib.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