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조치 의무를 미흡하게 이행한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5일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를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벌 수위를 이같이 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회동을 통해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오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총괄하는 사람으로, 사실상 기업체 대표나 임원 등을 말한다. 여야는 이와 관련해 징역과 벌금을 함께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안(2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10억원 벌금)보다 징역형의 하한선을 낮추고 벌금형의 하한을 아예 없애는 쪽으로 처벌수위가 완화됐다. 법인의 경우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50억원 이하 벌금, 부상이나 질병 사고에 대해서는 10억원 이하 벌금이 각각 부과된다.
여야는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같은 이른바 ‘중대시민재해’에 대해서도 경영책임자와 법인에 같은 수위의 처벌을 하기로 합의했다. 중대시민재해의 경우에는 공중교통시설 등이 포함되는 점을 고려해 안전 관련 의무 중 ‘점검’ 문구를 추가했다. 공무원 처벌 특례규정은 직무유기와 중대재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삭제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법안소위 위원장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범위가 굉장히 넓고 다양한 재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케이스에 따라 합리적인 판단을 할 재량의 여지를 두는 쪽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처벌수위는 여야가 일부 합의는 했지만, 재계와 노동계 의견이 여전히 팽팽히 맞서는 등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쟁점이 모두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회의 처리 날짜를 먼저 못박은 셈이어서 졸속 입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관련 논의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가 법안 통과 시점을 사흘 뒤로 못박자 재계와 노동계 양쪽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국회를 찾아 “중대재해법 제정을 재고해 달라”고 촉구했다. 반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법의 근본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며 “경영 책임자와 원청 처벌이 명확히 명시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처벌 수위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와 관련해 정부안(손해액 5배 이하)은 박주민 민주당 의원안(5배 이상)이나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3배 이상 10배 이하)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법무부와 법원행정처는 “현행 징벌적 손해배상 수준에 비해 상당히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야당 일각에선 중대재해법의 졸속 입법 우려가 나왔다.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근본적 문제는 눈 감고, 시행한 뒤 문제 있으면 보완하자는 것이 여당 태도”라고 비판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약자인 노동자는 없고, 강자인 재계의 민원만 보인다”고 주장했다.
양민철 이상헌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