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피로 가득 차 있고, 온몸이 골절돼 있었으며, 췌장이 완전히 절단돼 사망한 정인양의 생전 모습을 보며 비통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들은 아동학대를 일삼은 살인자입니다. 피고인 장○○, 안○○를 최고형 엄벌에 처해주세요.”
지난해 결혼했다는 서울 마포구의 김윤경(27)씨는 지난 4일 ‘정인양 학대 사망 사건’ 심리를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신혁재)에 ‘엄벌 진정서’를 제출했다. 신혼부부로 자녀 계획을 고민하던 중 사건 내용을 접한 김씨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예뻤던 정인이가 학대 당하며 멍들고 말라가는 동안 어른으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런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껴 진정서를 쓰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참혹한 사건을 두고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 진정서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30대 주부 최모씨도 같은 마음이었다. 6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최씨는 “정인이도 생후 6개월 즈음 입양됐던 걸로 아는데 아이를 볼 때마다 자꾸 정인이가 떠올라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괴로웠다”며 “나만 힘든가 싶어 맘카페에 가보니 많은 엄마들이 같은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었다”고 했다.
양부모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엄벌 진정서’ 캠페인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680건의 진정서가 재판부에 접수됐다. 시민들은 자신이 쓴 진정서를 SNS를 통해 공개하고 작성 시 유의사항 등을 공유하며 동참을 호소했다.
진정서를 써본 적 없던 이들은 서류 양식, 진정서 개요 등 ‘진정서 작성법’을 배워가며 썼다. 김씨는 “혹시 진정서 효력이 없을까봐 주민등록증 사본까지 앞뒤로 첨부해 등기로 보냈다”고 말했다. 최씨도 “간단한 개요나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문장 등을 참고해 4장을 작성했고 아이와 함께 우체국에 직접 가서 보냈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사건과 관계 없는 일반인들의 진정서 제출 릴레이가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재판부에 제출되는 엄벌 진정서는 통상 피해자가 작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진정서가 추후 재판부의 양형 판단 과정에서 참고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사안 자체가 중대하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도 진정서를 내는 것 같다”며 “진정서가 법적 효력이 있는 증거가 아니어서 유무죄를 가릴 자료는 될 수 없지만,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할 경우 ‘국민적 공분을 샀다’는 식으로 양형 요소에 참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동학대치사, 방임 등의 혐의로 지난달 8일 기소된 양부모는 오는 13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기소 이후 정인양 사망 원인에 대한 재감정을 의뢰한 서울남부지검은 감정 결과에 따라 살인죄를 적용해 공소장을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우진 최지웅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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