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이른바 ‘정인이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던 아동복지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학대 피해아동을 즉시 분리하는 내용 등이 담긴 이 법안은 하지만 3월부터 시행된다. 21대 국회 들어서도 여야는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적으로 불거질 때마다 관련 법안을 앞다퉈 발의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참혹한 사건을 막지 못했다.
국회는 지난해 천안 계모 의붓아들 살해 사건, 경남 창녕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자 아동학대 관련 법안을 발의하거나 계류 중이던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아동복지법 개정안으로, 의료기록을 통해 학대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고위험군 아이들을 발굴하고 관계기관이 원활히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종합정보시스템을 마련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정인이 사건을 막기엔 때늦은 입법이었다. 이 법안은 지난해 11월 26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를 통과했고 12월 2일 국회에서 처리됐다. 정인이는 10월 13일에 사망했고, 3번의 신고를 외면한 경찰은 그제야 수사에 착수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아동복지법 개정안 통과가 반년만 빨랐어도 참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크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민주당은 피해아동 쉼터를 확대하고 전담 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조만간 출범하는 자치경찰에 아동학대 문제를 전담해 책임지도록 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사회적 공분이 일자 정치권은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법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매 국회마다 대부분이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통과된 법안들도 사각지대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여야는 오는 8일 종료되는 임시국회까지 관련 법안들을 신속히 검토하고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야는 서둘러 추가 법안을 쏟아냈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피해아동 사후관리가 철저히 이뤄지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노웅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가해자 신상정보 공개 및 아동학대범죄 법정형을 높이는 법안을 내놨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경찰과 전담공무원이 아동 주거지에 출입할 수 있게 하고, 이들의 법적 책임을 면제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만 정치권이 반짝 호응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에서 아동복지법 개정안만 107건이 발의됐지만 이 가운데 69건이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아동학대범죄처벌법 개정안은 42건이 발의됐으나 34건이 임기만료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5일 기준 100건에 가까운 관련 법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경찰의 미흡한 대처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은 “현장에선 경찰이 강제조사에 나섰다가 손배소 등 민사소송에 휘말리는 경우가 잦아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며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원이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경찰 대응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담기관이 공조하도록 돼 있는데 원활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미 발의된 법안들도 있다. 김홍걸 의원은 앞서 경찰 현장조사에 강제성 부여, 경찰의 아동학대 교육 의무화 법안을, 정성호 의원은 경찰 현장보고서를 학교와 공유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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