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여행 비행기 삯은 일등석인 귀국편 항공기표를 일반석으로 바꿔 마련했다. 동행한 두 사람과 달리 나는 성지순례를 위해 이스라엘로 가고픈 희망이 있었다. 이집트에서 두 사람이 귀국하고 나만 이스라엘로 향했다. 1962년 당시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갈등으로 중동 정세가 불안했다. 나는 다행히 카이로에서 우연히 만난 요르단왕국 명문가 딸의 도움으로 요르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헤브론과 사해, 베들레헴과 요단강 주변 등을 돌아봤다. 가슴 아프게도 성지엔 미신적 유물과 장사꾼이 가득했다. 이스라엘로 가서는 예수의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고 다볼산과 갈릴리 호수도 찾았다. 갈릴리호숫가의 한 호텔에 머물다 바닷가를 거닐며 이런 기도를 했다.
“주님, 어릴 때부터 주님의 흔적이 있는 성지를 간절히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와 보니 모든 곳이 우상화됐고 성직자는 돈벌이에 급급합니다. 누가 이 지역을 거룩하다고 하겠습니까.”
그때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너는 여기서 왜 나를 찾느냐. 나는 지금 여기에 있지 않고 한국의 가난한 형제, 삶의 길을 찾지 못한 젊은이, 너희의 사랑과 봉사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과 머물고 있다. 나와 더불어 일할 곳으로 돌아오라.’ 이 기도를 마친 뒤 나는 다른 나라에 들르지 않고 귀로에 오르기로 했다. 기독교는 공간적 신앙이 아닌 시간, 즉 마음의 종교임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다.
1972년 6월엔 아내와 함께 두 번째 세계여행을 시도했다. 미국 캐나다를 거쳐 유럽 인도 중동 등지를 돌았다. 나는 주일마다 현지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덴마크 영국 미국 이탈리아 일본의 교회 참석 인원이 점점 줄고 있었다. 이런 추세는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지성인 수가 많아질수록 뚜렷했다. 한국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대학 출신 젊은이가 많아지고 과학과 지성적 비판력이 높아지면, 교회 성도 수가 적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많이 모인다고 해서 그 규모만큼 그리스도 정신이 열매를 맺는 건 아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시대에는 초(超)이성적이며 휴머니즘과 부합될 수 있는 종교와 신앙이 필요하다. 예수는 구약의 율법을 인간적 생명의 진리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기독교가 탄생한 것이다.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인간성과 삶의 진리를 구속하는 교리와 교리주의를 탈피하지 못하면, 앞으로 종교는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에게 인간다운 삶을 약속해 주며, 자유와 평화를 증대시킬 수 있을까. 이것이 기독교가 제시하고 나가야 할 방향이다. 기독교의 목표가 교회 자체가 아닌 하나님 나라가 될 때, 진리와 인격의 왕국이 건설되는 생명력 있는 종교로 발전할 수 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