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건 당국이 보다 많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모더나 백신 1개를 절반으로 나눠 2명에게 접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영국에서는 2차 접종 시 1차와 다른 종류의 백신을 사용해도 된다는 지침이 나왔다. 백신 공급량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접종자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각종 변칙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미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그램인 ‘초고속 작전’을 이끄는 몬세프 슬라위 최고책임자는 3일(현지시간) CBS에 출연해 “모더나 백신 1개를 반으로 나눠 접종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확보한 백신의 총량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1차 접종자를 대폭 늘리기 위한 접종 방안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슬라위는 모더나 백신 임상시험에서 50㎍(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 백신을 2회 접종한 사람과 100㎍ 백신을 두 차례 맞은 사람과 동일한 면역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절반 투약’의 근거로 들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모더나와 함께 이 계획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슬라위는 “실제 시행 여부는 FDA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계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코넬대의 백신 전문가 존 무어 교수는 “어떤 백신은 이미 최소한의 투약량이 정해져 있을 수 있다”며 “(절반씩 접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가장 먼저 시작한 영국에서도 접종 지침을 둘러싼 혼돈이 커지고 있다. 다급한 상황에서는 1, 2차 접종 때 서로 다른 제약사 백신을 투여해도 된다는 영국 정부의 지침이 문제가 됐다. 영국 보건 분야 관계자들은 “정부가 과학을 완전히 버린 상태에서 코로나19 혼란을 벗어나기 위한 길을 어림짐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 2차 접종 사이의 간격도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은 지난달 30일 코로나19 백신의 1, 2차 접종 간격을 12주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영국 정부가 승인한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회차 접종을 마치고 3~4주 뒤 2회차 접종을 해야 하는데, 이 간격을 12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2회차 접종을 미루고 최대한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1회차 접종을 실시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1차 접종만 받아도 단기적인 면역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주장이지만 백신 개발사나 전문가들의 반론도 상당하다. 화이자는 “백신을 1차 접종하고 3주가 흐른 시점에서도 예방 효과가 지속되는지 입증할 데이터가 없다”며 2회 접종 지침 준수를 권고했다. 파리 앙리-몽도 병원의 감염병 전문가 장 다니엘 르리에브르 박사도 “2차 접종의 목적은 면역력을 지속시켜 삶을 정상으로 복귀시킬 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다”며 “한 차례 주사로 같은 수준의 보호를 제공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경고했다.
접종 간격 논란은 미국에서도 번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는 이날 ‘백신의 두 번째 접종을 연기하는 것을 고려할 때’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캘리포니아대 의학과 로버트 와처 학과장과 브라운대 공중보건대 아쉬쉬 자 학장은 이 기고문에서 “미국 내에서 매일 수십만명의 감염자와 수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1억명의 고위험군에게 80∼90% 효과가 있는 한 번의 주사를 제공하는 것이 5000만명에게 두 번의 주사를 제공해 95% 효과를 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과학에 위배된다”며 1, 2차 접종 간격 연장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