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낙연’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신중한 성향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치권을 뒤흔드는 카드를 덜컥 던지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여권에서 당혹감과 의아함이 교차하고 있다. 이 대표가 결과적으로 무리수를 둔 이유는 본인의 원칙주의적 성향에 따른 개인플레이, 친문 등 핵심 지지층과 미완의 화학적 결합, 정무적 기능 부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대표가 신년 벽두부터 던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은 여진이 이어지면서 당내 리더십에 상처를 내는 모습이다. 이 대표가 4일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자 채팅창에는 ‘당대표에서 물러나라’ 등 지지층의 비난 댓글이 쇄도했다. 권리당원 게시판에 게재했던 새해 인사글에도 사퇴 촉구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대표가 지나치게 신중하다가도 가끔씩 예상치 못한 카드를 던지는 이유로 우선 완고한 원칙주의적 성향을 꼽는 사람이 많다. 이 대표의 한 측근은 “본인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바로 결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중요 사안을 홀로 결정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직언을 하는 참모와 고성으로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뒤돌아서면 조용히 조언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측근은 “그렇게 화를 내더니 어느날 보면 조언대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 대표가 갑자기 독단적 결정을 할 때 주변에서 자꾸 싸워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남지사와 국무총리로 오랫동안 여의도를 비우면서 중앙정치에 걸맞은 정무적 역할을 보좌진이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당 관계자는 “사면론을 처음 언급한 인터뷰에서 본래 의도를 잘 살리지 못했다”며 “인터뷰를 매끄럽게 준비하지 못한 실무 차원의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한 측근 의원은 “팀플레이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취임 후 정무실장에 현역 의원으로 직급을 키워 김영배 의원을 지명했다. 또 최근 메시지실장으로 기자 출신의 박래용 전 논설위원을 영입하며 체제를 정비 중이다.
당대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친문계와 공고히 결합하지 못한 점도 조급함의 원인으로 꼽힌다. 동교동계에 뿌리를 둔 이 대표는 정부 출범 전까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접점이 거의 없었다. 문재인정부 초대 총리를 지내면서 문 대통령의 신뢰를 얻었으나 당 강성 지지층 및 친문 의원들과는 아직 거리감이 있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한 친문계 의원은 “이 대표는 열린우리당 창당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한계, 동교동계와 가깝다는 인식이 아직 남아 있다”며 “선명한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주변에 우호적인 의원들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 문재인캠프 영입 인사 출신인 양향자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에서 “사면 같은 중대한 사안은 국민 시각에서 봐야 한다. 조급함을 절박함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걸 다짐한다”며 사면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가현 박재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