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려고 문연다”… 벼랑끝 헬스장 ‘방역저항’

입력 2021-01-05 04:02
집합금지명령에 불복해 문을 연 경기도 포천의 아이언짐 헬스클럽에 4일 오후 경찰과 포천시 공무원들이 찾아가 운영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포천=최현규 기자

공개적인 ‘방역 저항’이 터져나왔다. 집합금지 대상인 경기도 포천의 ‘아이언짐’ 헬스클럽이 4일 문을 열었다. 17일까지 연장된 2.5단계 거리두기에 불복해 영업을 강행했고, 이를 대놓고 SNS에 밝혔다. 그러자 불복 영업에 동참한 각지의 헬스클럽에서 개장 인증샷이 인터넷에 줄지어 올라왔다. 모두 한 달 넘게 문을 닫고 방역지침에 순응하던 곳이었다. 이날 오전 포천 아이언짐을 찾아가 오성영(52) 관장에게 이유를 물었다.

“쌀독에 쌀이 떨어져 밥할 쌀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도둑질 말고는 영업 재개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는 3일 오후 회원들에게 정상 영업을 알리는 문자를 돌렸다. 4일 오전에는 인스타그램에 이를 공개했다. 안내에 따라 운동하러 나온 회원은 2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환불을 원하는 문자만 3건을 받았다. 오 관장은 통장을 꺼내 보여줬다. ‘○○카드대출금 1000만원’ ‘△△캐피털 3200만원’ ‘◇◇카드론 300만원’ 등 대출 내역이 빼곡히 찍혀 있었다. 지난가을부터 잔고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때마다 빌린 대출금은 총 9000만원. 이 돈도 지금 190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오성영 관장이 공개한 통장 내역. 시중은행 대출이 막혀 저축은행·카드론·캐피털 등 제2금융권에서 총 9000만원을 빌려 운영비로 써 왔다. 지금 이 통장에는 190만원만 남아 있다. 오성영 관장 제공

그는 “헬스클럽은 노래방, 피시방과 달리 장기 회원이 많은데 집합금지가 계속되면서 재등록을 포기하는 회원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정부 지침에 성실히 협조했지만 남은 건 먹고살 걱정뿐이다. 대출받은 돈도 다 써서 영업재개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새해 첫날 대구에선 50대 재활체육시설 관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거리두기 2단계 지역인데도 사실상 영업중단 상태였던 자신의 업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메모를 남겼고, 경찰은 경영난을 원인으로 추정했다. 그의 죽음을 언급하며 안타까워하던 오 관장은 정부 방역지침에 문제를 제기했다.

“같은 체육시설인데 어떤 건 되고(9인 이하 영업이 허용된 태권도·요가·발레 교습소 등) 어떤 건 안 된다. 도대체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3단계로 굵고 짧게 가자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듣지 않더라. 특정 업종만 금지하는 게 무슨 소용인지 되묻고 싶다.”

지난해 정부는 거리두기를 세 차례 격상하며 자영업종에 집합금지명령을 내렸다(3·9·12월). 1, 2차 때는 없었던 방역 저항이 3차 유행 장기화 시점에 터져나온 것은 자영업자들이 그만큼 한계에 몰렸음을 말해준다. 이날 서울 경기도 등지에서 헬스클럽 300여 곳이 문을 열었고 700여 곳이 간판 불을 켜고 ‘시위’를 벌인 것으로 추산됐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죽 힘들면 그러겠느냐”는 안타까움과 “방역에 균열을 초래한다”는 우려가 엇갈렸다.

방역 당국은 17일 이후에나 집합금지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2시20분쯤 포천시 공무원들이 경찰과 함께 아이언짐에 찾아왔다. 오 관장에게 문을 닫으라고 요구하며 “사정이 딱하지만 방역지침을 지켜야 한다. 운영을 강행하면 관련법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통보했다. 오 관장은 문을 열 수밖에 없다는 말만 거듭했다.

포천=최현규 기자 frost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