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의 대대적인 ‘2050 탄소중립 선언’이 무색하게도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경유차 1000만 시대가 현실화됐다. 경유차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유세 인상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뒷짐을 지고 있다.
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경유차 등록 대수는 999만5685대다. 증가 추이를 봤을 때 조만간 발표될 12월 통계에서는 누적 대수가 1000만대를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다방면으로 펼친 경유차 축소 대책이 결과적으로 국민 수요를 줄이지 못한 셈이다. 이대로라면 2050년 전 내연기관차 퇴출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앞서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지난해 11월 내연기관차 퇴출 시점을 2035년 혹은 2040년으로 제안한 바 있다.
경유차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 경유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당장 전문가들도 탄소세 등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기 전에 일단 경유세를 먼저 인상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경유세 인상은 민간에 ‘경유차 규제’라는 강력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최종적으로는 보편 세제인 탄소세로 가야 하겠지만, 당장은 기업 등에 미칠 충격을 감안해 경유·석탄 등에 대한 세금으로 세수를 늘릴 방안을 고민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도 수송용 휘발유와 경유 간 상대가격을 2018년 기준 100대 88에서 100대 95 내지 100대 100으로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만 정부는 경유세 인상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그동안 경유세 인상안을 검토할 때마다 늘 ‘서민 증세’ 논란에 휘말려 좌초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경유 화물차를 이용하는 운송업자나 자영업자 등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또 경유세를 인상하려면 화물운송사업자를 대상으로 지급하는 유가보조금을 조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우선인데 이를 손보기도 쉽지 않다. 2005년 정부가 휘발유와 경유 간 상대가격을 100대 75에서 100대 85로 올리자 화물연대가 대대적인 총파업에 나선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화물차에 주는 유가보조금을 폐지하고, 경유세를 인상하는 방향이 장기적으로 맞는다는 데 동의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결국 정치권이 이해관계자들 간 얽힌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접근하기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홍 교수는 “정부가 어려운 문제라는 식으로 빠져나가며 물류시장 자체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다”며 정부가 갈등 조정보다는 책임 면피에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화물연대 측은 운임 현실화를 해주면 유가보조금을 폐지해도 된다는 입장”이라며 “바이어들이 유가보조금만큼 운임에서 깎는 등 암묵적인 불공정 행위들이 횡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