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영진(23)이는 태어난 직후부터 엄마의 젖을 잘 빨지 못했다. 예방접종을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힘없이 축 늘어진 아이를 본 의사는 지적장애와 뇌병변장애를 가진 중증중복 발달장애라고 진단했다.
“하나님께 구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는데 아이에게 장애가 왔습니다. 제 머리털 숫자까지 세시는 하나님이 실수하시는 분일까요. 아닙니다. 제 잘못도, 그분의 실수도 아닙니다. 저를 시험하거나 벌을 주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장애아를 둔 부모 중에는 이 시기에 분노하고 의심하며 하나님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게 아닙니다. 청년시절 말씀을 통해 만난 그분의 성품을 전적으로 신뢰했을 뿐입니다.”
최근 경기도 김포에서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 ‘파파스윌’이 운영하는 ‘달꿈’(달팽이의꿈) 커피숍에서 만난 엄선덕(58) 집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엄 집사는 영진이가 태어나기 전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쳤다. 아들의 치료를 위해 직장까지 내려놓고 전국 병원을 뛰어다니던 그에게 하나님은 ‘영진이를 통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같은 마음을 품고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의 고통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봤다. 학령기를 지나 청년이 된 아이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성장하지만, 늙고 힘이 없어진 부모 옆에서 방치되고 고립되곤 했다. 결국 시설로 다시 보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아이들을 자립시키고 비장애인들과 같이 일상을 누리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게 할 순 없을까.’
엄 집사는 2015년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김포의 부모들과 함께 자조 모임을 시작했다.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2016년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을 설립했다. ‘파파스윌’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다.
카페 달꿈을 오픈하고 바리스타 교육과 손님 응대하기 등 발달장애 청년들의 직업훈련을 시작했다. 공방 ‘빼무락’을 통해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목공예, 비누공예, 도예 강좌도 운영했다. 발달장애인 아이들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하고 실현해 볼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아카데미를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열어 편견과 차별의 벽도 허물어 나갔다.
이 훈련을 통해 20여명의 아이들이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지난해 1월에는 김포시청에 달꿈 2호점도 오픈했다.
‘영진이 엄마’로 불리며 22년을 살아온 엄 집사는 동생의 영향으로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뇌과학을 연구하는 첫째 우진이와 남편 김석도(58) 집사에겐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성도들에겐 당부의 말을 남겼다.
“파파스윌은 지역 주민의 사랑으로 가꿔집니다. 아이들이 비장애인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 하나님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김포=글·사진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