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당사자 반성이 중요”… 당내 반발 직면 이틀 만에 한발 후퇴

입력 2021-01-04 04:02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앞서 제안한 전직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청와대와 교감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그런 일 없다”고 답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꺼냈다가 이틀 만인 3일 한발 물러섰다.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 진영 갈등을 이젠 끝내야 한다는 정치적 소신에서 비롯됐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공감대 없이 덜컥 수를 던지면서 친문 의원들은 물론 계파 색이 옅은 중진 의원들 반발까지 불러오면서 결국 “당사자 반성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후퇴한 셈이 됐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두 전 대통령 사면 발언 이후 한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고민 끝에 사면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사전에 상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측근이 파장을 우려하자 이 대표는 “우리 사회 진영 간에 이렇게 극단적 대립이 이어지는 게 맞는거냐”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문재인정부를 위한 발언”이라며 “이 대표가 평소 소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이 대표의 사면론 배경과 관련해 “코로나19 백신 도입을 두고 여론조사를 했는데 우리 지지층의 80%는 안전성을, 보수당 지지층의 80%는 신속성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건강 문제에 있어서까지 이렇게 갈등이 확대됐다는 건 굉장히 큰 문제”라고 평가했다. 이어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면 개혁 작업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며 “적폐 청산 과정에서 그쪽(보수 진영)에 한이 생겼다고 본다. 통합을 얘기할 때가 됐다”고 설명했다.

문재인정부가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구속시킨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당 관계자들은 1995년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7년 김대중 당선인과 합의 하에 두 사람을 사면한 점을 거론하고 있다. 특히 유력 대권주자인 이 대표로선 오는 14일 박 전 대통령 대법원 판결이 이뤄지면 어차피 사면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만큼 먼저 ‘통합’과 ‘외연 확장’ 차원에서 이슈를 던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당내 반발이다. 친문 의원들은 물론 중진의원들조차 이 대표의 사면론을 반대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표의 리더십이 타격을 받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사면은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한 초선 친문 의원은 “개인과 당, 문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타이밍도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 4선 의원은 “통합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며 “국민의힘 일부에서 불법 탄핵에 대해 사죄하라고 하는 판에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중진 의원은 “사면은 대통령이 국민 통합할 때 쓰는 용도인데, 이번엔 이 대표가 자신의 지지율 하락에 맞서 국면전환용으로 쓴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친문 지지층은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 등에서 “당대표가 사면을 제안한 이유가 무엇이냐” “이게 국민과 민주당과 대통령을 위하는 것인가” “이 대표는 사퇴하라” 등 비판을 쏟아냈다. 이들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사면에 반대하라’는 문자메시지를 쏟아내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예상은 했지만 당 안팎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센 것 같다”고 했다.

야당은 민주당의 ‘선(先) 반성론’을 맹비난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무죄를 주장하면서 재판받는 사람에게 반성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라고 말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 문제를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는 모습이 과연 정상인가”라며 민주당과 이 대표를 성토했다.

강준구 이가현 박재현 기자 eyes@kmib.co.kr